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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Oct 29. 2022

찌르고 보듬고

나는 나의 원가족을 사랑한다. 어려운 시간마다 그들 덕분에 버텼다. 그러나 또 가족 때문에 받은 상처도 적지 않다. 가족은 늘 그렇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찌르고 보듬고 찌르고 보듬는다.      


엄마 아빠와는 오래전부터 멀리 있지만 언니는 줄곧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다. 내 가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언니에게 가장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 그렇지만 가장 서러웠던 기억도 거기 있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것이 어쩐지 좀 쿨하지 못해 잊으려 해도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다. 

형부와 언니는 맞벌이라 매일 저녁 조카를 데리러 우리 집에 들렀다. 우리 아이와 동갑인 조카는 유치원 하원 후에는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원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다.) 언니 부부가 조카를 데리러 오면 형부는 집안까지 들어와 조카를 이리저리 들어 올리고 입을 맞추고 온갖 애정행각을 하고는 했다. 그때는 아이 아빠가 몇 달째 집에 오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는 그들 부녀가 키득대고 간지럽히고 안고 뽀뽀하는 광경을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았다. 손에 든 밥 숟가락을 떨굴 정도로 넋을 놓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시기 질투도 서리지 못한 그저 부러움. 그리고 그리움. 나는 정말로 형부를 잡아끌어 내쫓고 싶었다. 속으로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모른다. 옆에 서서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눈치 없는 언니도 똑같이 싫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싸늘해지며 서운하다. 언니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털어놓았다. 다른 모든 일은 잊어도 그 일은 못 잊겠다고. 언니는 어머 몰랐어, 하며 미안해했다. 너무 미안해해서 나는 아냐 아냐 다 지난 일인데, 라며 훌훌 털어버리는 손짓을 했다.

우리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남들에게도 두루 너그럽다. 나에게도 엄격하고 남에게는 더 엄격한, 까칠하고 지랄 맞은 동생인 나는 언니의 그 넉넉하고 무탈한 성격이 대부분 좋지만, 가끔은 어째서 말하지 않은 것은 도통 모르는 건지 화가 날 때도 있다.     


나에겐 정서적으로 가장 먼 가족, 나의 아빠는 다정하고 무책임한 사람이다. 나는 다정함과 무책임이 너무나 찰떡같이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아빠를 보고 알았다. 나에게 멋진 사람이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제일 많이 말해준 것은 아빠였다. 등을 토닥여주고 손등을 문질러 주는 사람도 아빠였다. 쉽게 흥분하고 너무 깊이 관여하며 동시에 모든 책임을 같이 진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엄마라면, 보다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무엇을 공감의 포인트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대화가 관념적이고 이상적으로 끝나기 일쑤인 사람이 아빠다. 아빠는 어떤 문제도 돌아서면 잊는 듯하다. 쌓여가는 빚도 삼 남매의 대학 등록금도 엄마의 건강 문제와 동생의 미래와 나의 별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커갈수록 아빠의 다정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텅 빈 다정이라면 속임수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별거한다는 사실을 아빠는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가끔 엄마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듣고도 그에 대해 어떤 조언도 질책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게 나에 대한 믿음이었을까. 나는 감당하지 못하는 일 앞에서 늘 아빠가 선택하는 방법인 회피라고 생각했다. 무책임을 다정으로 감싸고 단지 시간이 어서 흘러가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아빠는 그러려니 했다. 나는 열정적이고 감정적인 엄마를 상대하는 일에 이미 지쳐있었다.    

  

한편 엄마는 처음부터 사위를 좋아했다. 그가 엄마처럼 자수성가한 사업가라서 좋아했고 돈을 펑펑 벌어서 너무 예뻐했다. 그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는 같은 사업가로서 안타까워했고 도움을 못 주는 것에 미안해했다. 엄마는 그가 가출했을 때도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도리어 내 탓을 했다. 네가 너무 쌀쌀맞게 굴어서 그렇다고, 남자 하나 휘두를 줄 모른다고, 헛똑똑이라고. 그런 말들은 너무 깊은 곳까지 관통한 상처가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게 문제가 있어서 결혼에 실패했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성급했고 무모했고 이기적이었고 어리석었다. 나는 남과 짝을 지어 같이 살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털어봐도 가진 게 없었고 그걸 숨기고 싶어 잘난 척을 하며 괜찮아 보이려 했지만 엄마는 자꾸만 내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존재라는 것을 말해서 알려주었다.

나는 언젠가 엄마가 아무리 속이 상해도 나만큼은 아니라고 말하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엄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따라 조금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엄마는 나보다 감격했다. 보내주는 양육비의 액수가 조금씩 늘어가자 더 그를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냐고, 잘하고 또 잘해야 한다고, 그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오늘은 자고 가라고 말하라고. 엄마는 내게 그를 접대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별거하면서 내가 엄마와 통화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ㅇ서방 왔니’였다. 그가 오는 일요일이 아닌 모든 날에 그걸 묻고 물었다. 엄마 이제 ㅇ서방이라고 부르지 말아 줘, 나는 여러 번 부탁했지만 엄마는 꿋꿋이 ㅇ서방 ㅇ서방 했다. 내게는 이제 남편이 아닌데 엄마에게는 여전히 둘도 없는 사위였다. 내게도 없는 지조가 엄마에게는 있었다. 


엄마가 예뻐하니 그도 엄마에게 잘한다. 좋은 과일도 고기도 보내고 따로 통화도 종종 하는 모양이다. 사업에 대해 아무리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해도 끈기 있게 격려하고 치하하는 엄마랑 이야기 나누는 것이 그도 퍽 좋은 모양이다. 오히려 둘이 사적으로 소통하게 되면서 엄마가 내게 이것저것 종용하던 것들이 줄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면 참 이상한 관계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성별과 세대를 뛰어넘은 따뜻한 우정이라고 여기려 한다.     

남편을 지우고 아내의 정체성을 버렸는데 어째서 엄마 아빠에게서 사위를 포기하게 하는 일은 이토록 힘든 것일까.      


둘이 얼마나 친하든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든 나는 상관없다. 내가 오랜 시간 별거하는 것이 누설될 경우 친지들에게 수치를 겪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엄마가 그와 가깝게 지내며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만 엄마가 틈만 나면 내게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득하려고 드는 것이 문제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은 사람인 걸까, 나는 반발심이 든다. 

자식 버리고 이혼하고 양육비도 안 주고 들여다보지도 않는 남자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는 거다. 사람 같지도 않은 이들과 비교해서 너는 그나마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칭찬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아빠라면 당연한 일에 황송해하지 않는 내게 퉁박을 주는 엄마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이제 와 아무리 돈을 주어도, 아이에게 잘해도, 나의 서른다섯여섯일곱여덟.. 그 시간들은 되돌릴 수 없다. 그는 괴로움에서 등을 돌려 사라졌고 돌아올 만 해져서 돌아왔다. 나는 그가 떠난 자리에 아이와 남았다. 나는 같은 괴로움을 제자리에서 씹어 삼켰다. 

그가 나름의 분투와 노력으로 개인적인 성공을 이루는 동안 나는 무얼 했을까. 나는 자리를 지켰다. 그것은 그것 나름의 애환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색낼 것이 아니다. 내 아이를 내가 안전하고 따뜻하게 키워내는 일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가 잘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아이와 내가 매일 밤 침대에서 나눈 눈빛과 이야기를 그는 모른다. 머리카락처럼 하루마다 조금씩 미세하게 자라는 아이를 나는 매일 눈에 담았다. 모든 순간이 몹시 사랑스럽고 귀했다. 그것이 경제적인 가치가 없는 일이 아니라 감히 경제적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일이다. 한 사람을 빈틈없이 애정 하며 길러내는 일에 하루 얼마씩을 책정할 수 있을까.     


남의 집 아들의 성공이 대견하고 부러워서 엄마 딸의 숨죽인 고통과 노고를 자꾸 깔보는 엄마가 미워질 때가 있다. 그에게 고맙지 않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다 돈으로 보상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나만큼은 아니라고,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딸이 이러고 사는 꼴을 다 보고..로 시작하는 긴 노래를 나는 엄마를 막아선다. 나는 나의 몫을 엄마는 엄마의 몫을 해내고 사는 거라고, 나는 별거의 삶을 엄마는 별거하는 딸을 바라보는 삶을 사는 것, 그게 팔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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