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위에 세울 수 없는 것들

앙드레 지드 - 지상의 양식

by 서해

책장을 덮어도 가시지 않는 멀미가 있다.

앙드레 지드의 문장들이 그랬다.


“온몸에서 가시지 않는 파도의 멀미, 저 넘실거리는 장루에 무슨 상념을 붙들어 맬 것인가.”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내가 붙들고 있던

수많은 ‘상념’들을 떠올렸다.

내일의 걱정, 어제의 후회,

그리고 끝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의 파고들.


나는 그것들을 단단한 땅 위에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가 서 있던 곳은 늘 흔들리는 파도 위였다.


지드는 말한다.

파도는 파도를 뒤따르지만,

그 안의 물방울은 결코 함께 가지 않는다고.


“오직 형태만이 돌아다닐 뿐, 물은 휩쓸렸다가
파도와 헤어져 결코 함께 가는 법이 없다.”


삶도 그와 닮았을지 모른다. 슬픔과 기쁨이라는

형태는 번번이 비슷한 얼굴로 돌아오지만,

그 속을 채우는 순간들은 매번 다른 물결로

흩어진다.


나는 그 찰나의 형태를 영원히 붙잡아 두려 했다.

지나가는 파도를 붙잡아

그 위에 집을 짓고 싶어 했던 마음.

아마 그 어리석음이

이 멀미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일도, 육아도, 누군가의 아내이자 딸이고

며느리인 역할도.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들.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이

나를 편하게 할 리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지드의 조언을 따라보려 한다.

어떠한 사상에도,

어떠한 집착에도

나를 얽매이지 않게 하는 것.


나의 사랑과 상념을

수확할 수 없는 “불모의 물결” 밭에

미련 없이 파종하는 일.

씨를 뿌리되 열매를 기대하지 않는 마음은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지독한 자유에 가깝다.


아무것도 세울 수 없는 파도 위에 나를 던질 때,

나는 비로소 파도와 함께 움직일 수 있다.


이 정처 없는 표류가 언제쯤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언젠가 이 멀미가 잦아들고,

회전 등대의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를 비추는

“다사로운 항구”에 닿게 되리라 믿는다.


그때의 바다는

나를 어지럽히는 심연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빛나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