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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Mar 08. 2020

어느 생일날.

‘아, 나도 저렇게 건강하고 푸르른 존재가 되었으면.'

7시 20분. 알람과 동시에 눈을 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부쩍 어려워져 오늘 잘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약간의 긴장감은 나의 눈을 한 번에 뜨이게 했다. 역시, 삶에서 조금의 긴장감은 있는 게 좋은 건가.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약을 복용했다. ‘42일’이라고 적힌 마지막 나의 약봉지.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오늘은 스테로이드가 조금 더 힘을 내어주었으면.      


-

며칠 전 M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가 있는 병원으로 오면 어떻겠냐고. M은 내가 다니던 병원에 코로나 감염 확진자가 생겨 당분간 폐쇄 조치를 내린다는 뉴스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 2월 말에 예정했던 CT 촬영도 미루어지고 정기검진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다 떨어져 가는 약봉지를 보며 불안하던 찰나였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M의 제안에 기쁘기도 했고 이번 기회로 다른 의사의 소견을 받아도 좋겠다 싶었다. 물론 차로 10분이면 가던 병원을 옮기는 것도 조금 망설여졌고 익숙할 즈음 낯선 병원과 의료원, 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에도 머뭇거려지기도 했다. 불가항력으로 일상을 흔드는 ‘코로나 19’에 내 삶의 어느 조각만큼은 익숙한 것에 의지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까. 하지만 뭔지 모를 주저함보다 M의 전문성을 더 신뢰하는 게 더 현명하겠다 싶었다. M은 간호사이다.      


M에게 내 질병 소식을 알린 건, 유육종증 확진을 받고 약 한 달 정도 지났을 때다. 지난겨울 닭한마리집에서 사이다를 마시며 내 질병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처음엔 그냥 듣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린 M을 보고 나도 따라 울었다. 사람으로 꽉 차고 닭 한 마리 육수 끓이는 화구마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꽉 차 버린, 회전율이 높아야 좋은 그런 맛집에서 여자 둘이 휴지를 부여잡고 울고 있는 모습이란. 맥주 대신 주문한 사이다에 분명 취했던 게 분명하다.      


무튼 그날의 열기를 떠올리며 나는 병원을 옮겼다. M은 내가 준비해야 할 기록 자료를 꼼꼼히 일러 주었고, 나는 놓칠세라 받아 적었다. 필요한 진료기록을 위해 기존 병원에 방문했고 별관에 임시로 차려져 있는 곳에서 그동안의 진료 기록을 CD로 담고 진료서를 출력했다. 나보다 먼저 와 있는 분들 중에는 왜 자신이 받은 진료(이미 돈을 낸)를 옮겨가는데 또다시 돈을 지불해야 하냐고 담당하는 스태프에게 항의했다. 나 역시 지금 같이 인터넷 효용성이 높은 시대에 음악도 아니고 영상 기록을 CD로 구워 직접 제출해야 하는 시스템이 퍼뜩 이해는 되지 않았다. 이것보다 더 편리한 방법도 있을 텐데,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누가 봐도 임시로 마련된 병원의 작은 한쪽에서 마스크를 쓰고 바쁘게 업무를 하는 사람과 마스크를 쓰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모두가 지쳐있는 그 공간에서, 그 불편함이 상황의 무력함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3월 6일 오전. 생각보다 빠르게 준비했다. 지도 앱을 켜 갈 곳을 재차 확인하고 챙겨야 할 서류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기다림의 필수품 전자책을 넣고 필름 카메라도 챙길까 고민했다. ‘아, 무게가 조금 나가는데, 오늘 안 사용하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가져가 보자.’ 여전히 낯선 새 병원의 문자 안내를 읽으며, 예상되지 않는 하루를 애써 그려 보았다. 그래도 안심이 되는 건 그 병원에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 하나.    

  

병원과 지역이 달라서일까. 사람들의 모습도 괜히 달라 보였다. 옷차림 스타일과 옷 색까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기운. 문자 안내에 따라 먼저 CD로 진찰 내용을 전송하고 수납을 하고 예약 번호표를 뽑고, 그리고 차례를 기다렸다. 예전 같았으면 어영부영했을 것 같은데, 제법 익숙하게 절차를 밟는 내가 아주 조금 대견했다. 새롭게 만난 의사는 예전 진료 기록을 살펴보며 내 폐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한 번 더 엑스레이를 찍어서 경과를 살펴봤으면 한다기에, 지하로 내려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조금 나아졌기를 기대했지만, 엑스레이 상 내 폐의 염증은 한 달 반 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 보였다.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 조금씩 좋아지고 있을 겁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 밖에 보이지 않는 그래서 동그란 눈이 더 인상적인 의사가 말했다. 부작용이 걱정되니 현재 복용하는 약은 늘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다음 달에는 CT촬영을 해 보자고 했다. 뭘 어떻게 해야 염증이 나아지나 답답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마지막 의사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믿어볼 수밖에. 좋아지고 있을 거라는 말과 모든 말을 듣고 있을 내 몸을.    

 

언제 기분이 우울했냐는 듯 점심시간에 맞춰 다시 만난 M과 점심을 먹으며 수다로 배를 채웠다. M은 당분간 자신이 있는 병원에 다니며 경과를 지켜보면 어떻겠냐고 했고, 나는 좀 더 내 폐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이곳이 좋아 그러겠다고 했다. 더욱이 이유야 좀 그렇긴 하지만 덕분에 짧게나마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갈비탕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다시 업무를 보러 올라가는 M을 데려다주는데, M은 이 병원 앞에 바로 창경궁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 그랬지. 여기 바로 맞은편이 창경궁이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예전 병원에서는 북한산이 보였는데 여긴 창경궁이 보이는구나. M이 복귀하기 전 우리는 잠시 병원 테라스에서 창경궁을 바라보았다. 이 병원도 괜찮겠다 싶었다.     

 

잠시 창경궁에 머물러도 좋을 만큼 시간이 있어,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없을 것만 같은 오후의 금요일, 그래서였다. 필름 카메라와 핸드폰만은 챙기고 창경궁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소나무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 나도 저렇게 건강하고 푸르른 존재가 되었으면.’ 한참을 바라보다 카메라로 나무를 담았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사방으로 곧고 다양한 방향으로 뻗은 나뭇가지와 그 사이를 채운 하늘을 찍었다. 저 나무도 늘 저렇게 건강하진 않았을 텐데, 그 세월을 다 견뎌내고 굳건하게 서 있는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M에게 핸드폰으로 찍은 나무 사진을 보냈다. 우리도 저 나무처럼 건강하고 푸르른 사람이 되자고. 나만의 신호이고 해석이긴 하지만 필요한 전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바꾸었더니 친구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창경궁을 산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옮길 때의 확신은 친구의 전문성에 기대였지만 결국 선택은 내 무언가 모를, 누가 보면 굉장히 비과학적인 느낌을 그냥 믿기로 했다. 좀, 말이 안 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보면 더 멋지답니다 : ) 


-           

우리, 생일 당일에 만날까. S의 제안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아프고 나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어서 그랬을까. 나와 JJ는 좋다고 했고, ‘코로나 19’로 공공장소가 아닌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함께 먹을 음식과 음료 메뉴를 생각하며 재료를 주문하면서 즐거웠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기도 하고 생일 당일에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임신과 질병으로 잠시 알코올을 멀리해야 했기에 무알콜 모히또를 만드는 법도 검색했다. 그냥 생일이니까, 하루만은 코로나 19도 질병도 잠시 멀리 있었으면 했다.    

  

생일에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며 JJ는 국거리용 고기를 준비해 왔고, 엄마가 보내주신 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었다. 그렇게 한상 차려먹고 S가 사 온 케이크에 초를 불었다. 친구들이 차려준 생일상에 나는 올해 더욱더 모두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오후 네시 반. 밤 10시쯤 돼서 JJ의 짝꿍이자 내 대학 동기인 T가 합류하면서 15년 지기 짬에서 나오는 거침없는 수다의 스펙트럼은 무한대로 확장했다. 무언가에 갇혀 있다가 한순간에 한꺼번에 해방된 듯한 기세. 그때의 S와 JJ를 잊지 못하겠다. 하하.      


새벽이 돼서야 우리는 헤어졌다. 친구들을 배웅하고 집을 정리하고(동생의 도움으로) 누우니 새벽 두 시 반. 아프고 난 이후로 이렇게 늦게까지 깨어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즐겼던 금요일 밤이 언제였나 싶었다. 아침에 복용하는 약에 맞춰 일어나고 잠자는 시간을 맞췄던 요즘이라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즐거움이었는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집에서 만났던 거였는데, 우리는 또 그랬기에 가능한 생일을 함께 보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는 생일 하루를 그렇게 맞이하고 보낼 수 있었다.    


오전 7시 20분, 눈을 떴을 때부터의 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머뭇거리기도 하고 씁쓸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기분 좋은 전환의 신호들과 존재들이 나를 챙겨주는 하루였다. 병원에서 만난 M이 그랬고 창경궁에서 만난 나무가 그랬다. 평소같이 출근을 했더라면 놓쳤을 순간을 JJ와 S, T가 만들어 주었고,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의 고마운 선물과 메시지가 랜선을 타고 마음을 쿡쿡 건드렸다.  


비록 폐의 염증은 한 달 반 전의 모습과 차이가 없지만 오늘과 같은 날이 있어서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래서, 내일도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저땐 몰랐네요. 왜 숟가락 젓가락 짝이 저모냥입니까 ㅎㅎㅎ 

 


글과 함께 소개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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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Salt  "Honeyweed" 

봄과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밴드인 것 같아요. 작년에 푹 빠져 버렸는데, 취향에 맞다면 전곡을 들어보셔도 어떨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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