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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Feb 02. 2020

사르코이드를 만나기 백 미터 전.

또는 유육종증이라고도 한답니다.

유육종증, 또 다른 말로는 사르코이드증. 여전히 조금은 나에게 낯선 단어. 아마도 내 마음과 머리만 이 질병을 낯설어하고 있겠지. 몸에선 염증이 꽤 오랫동안 머물렀을 테니까. 내 몸인데,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내 몸인데. 유육종증이 의심된다며 폐 엑스레이를 보여주던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친숙해서 잊고 살았던 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척 낯선 몸짓으로.         


엄마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는 대답했다. 정말 무단히,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심각한 통증이 느껴져서도 아니고 이전에 의심되는 진찰을 받아서도 아니었다. 살이 빠졌다며 걱정하는 사람들의 염려가 지쳤고,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했다. 마침 건강검진을 하는 해였기에 이왕 하는 거 꼼꼼하게 다 하자고 생각했다. 결국 내 몸은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니까.       


음, 그러니까 세 달 전이었을 거다. 


처음으로 병원 홈페이지에서 검진 예약을 했다. 건강 검진을 문의했던 병원이 유방암 검사는 하지 않아 다른 곳을 추천해 주었다. 병원 홈페이지에는 가운을 입고 팔짱을 낀 의사들의 화려한 약력이 모두 소개되어 있었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경력이 있으며 어떤 논문을 썼는지 등 모든 정보가 상세히 나와 있었다. 이런 정보가 뭐가 필요한가 라는 생각도 잠시 나는 의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상까지 점쳐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더 진료를 잘할까, 이 사람은 불친절할 것 같은데, 이왕이면 남자보다 여자 의사였음 좋겠는데.' 별별 생각을 하면서 나의 가슴을 맡길 의사를 찾느라 생각보다 예약은 오래 걸렸다. 웃겼다. 평소 사람을 만날 때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요소들을 나도 모르게 꼼꼼하게 비교하고 있었다. 의사의 주 진료과목과 경력 정도면 충분히 되었을 텐데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든 정보를 흡입하게 했다. 


병원 홈페이지에서 봤던 의사의 이미지와 실제 모습은 느낌이 달랐다. 인상이 조금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약간 느릿하지만 중저음의 목소리가 안정감을 주었다. 의사는 육안으로 먼저 검진했고 초음파 검사를 권했다. 겨드랑이에 뭔가 잡히는 것도 있었고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양성 혹이 많으니 한번 검사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비보험 적용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초음파 검사 금액에 순간 망설였지만 그리 자주 하는 것이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대학병원(3차 병원)의 미학은 기다림이던가. 의사를 만나기 전에도 1시간을 기다렸고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서 또 기다렸고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또 기다렸다. 혹시나 해서 들고 간 전자책이 큰 도움이 되었다.           


친절하고 담백한 설명이었다. 조직 검사가 필요하겠다는 결론이었다.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을 하는 의사 옆에 앉아, 처음으로 관찰하게 되는 내 신체의 신비를 반쯤 듣고 반쯤 흘려들었다. 의사는 나에게 조직 검사와 함께 폐 엑스레이를 찍어야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때부터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다행히 가슴은 문제없었다. 물론 양성 혹이 많이 있긴 했지만, 악성으로 되려는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겨드랑이와 폐였다. 의사는 폐에 생긴 염증과 주변에 퍼져있는 임파선이 비대해져 있는 모습을 가리켜 보여 주었다. 아무래도 정밀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소견이었으며, 호흡기 내과 선생님을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3층에서 2층으로, 유방암 센터에서 호흡기 내과로 이동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 의사는 나에게 두 가지 가능성을 설명했다. 하나는 결핵이고 또 하나는 유육종증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무슨 결핵인가 싶겠지만 생각보다 결핵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만약 결핵으로 판명된다면, 치료를 하면 그만일 테지만 문제는 유육종증이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희귀 질환은 스테로이드를 써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것만이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간이면 몰라도 폐에 염증이 있을 거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수만 가지나 되지만 특별히 설명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눈만 꿈뻑꿈뻑 거리며 답답해하는 나를 보더니, 의사는 그제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설명했다.      


‘유육종증은 원인이 불명확하지만,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로 보실 수 있습니다’      


추가 검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더 정확한 진단을 하기 위해서다. 염증이 어디까지 퍼져 나갔는지, 의심되는 합병증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혈액검사, 심전도 검사, 눈 검사, 폐 CT 촬영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끝으로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대한 주의도 잊지 않았다. 


자가면역질환이라니. 내가?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모든 게 내 책임 같았다.


  


글과 함께 소개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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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 Jordan "I Should Care" 

Flight to Jordan,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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