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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PD Aug 01. 2021

난 뭘 좋아하지

인생을 설렘을 채우기 위한 결정


친구가 모 방송국 주최 스키 캠프를 제안한다. 일 년 전의 인생 첫 좌절을 겪은 후 맞이한 겨울, 기분 전환 겸 별다른 고민 없이 따라나선다. 주변이 모두 생소하다. 사람도, 내 발을 죄여 오는 부츠도. 추위를 싫어하면서도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스키는 그렇게 다가왔다.


다행히 지진아 반은 모면한다. 40명 중, 중간쯤 정도로 초급반을 벗어나 리프트에 몸을 싣는다. 그해 유난히 수북이 쌓인 눈은 긴 스키 플래이트를 더 무겁게 한다. 그런데 왜일까. 눈 속을 파 묻힌 포근함이 좋다. 조금씩 익숙해진다. 잘 타고 싶어 진다. 그리고 스키장은 연례행사가 된다. 삿포로, 레이크 타호 스키장에서의 활강도 만끽하게 된다.


그녀를 만난다. 소개에 응한 이유가 스키를 탈 줄 아는 남자여야 한다는 조건에 맞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르치는 건  기본 욕구인가 보다. 가르치는 일도 즐겁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님에도 익숙해진 스키여서일까. 힘들어하는 이들의 스키를 잡고 뒤로 스키를 타는 재미가 추가된다. 스키는 평생의 동반자를 이어준다.


좋아하는 취미를 물으면 주저하지 않는다. 언제가 타보겠다는 꿈도 없었다. 재능의 발견도 아니었다. 사람의 매력에 끌려 시작한 것도 아니다. 흔히 말하는 시작 이유를 찾기 쉽지 않다.


좋아하는 것이 많으면 좋다. 대화거리도 많아지고, 기분 전환을 하기도 쉽다. 디지털 세상은 콘텐츠로 이어갈 기회의 창도 열어준다. 하나의 발견은 또 다른 발견으로 이어진다. 제안을 받거나, 추천이 들어오면 그냥 해보는걸 기본으로 정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지만, 기대감이 적다 보니 만족감은 커진다. 해보고 별로이면 안 하면 되고, 재미는 있는데 잘 안되면 잘하는 방법을 배우면 된다. 프로가 될 것도 아닌데 결단까지 필요하지 않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좋아하는 걸 놓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름 정리해본 좋아하는 일을 만나는 방법을 정리해 본다. 


낯선 상황을 즐기자

새로움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생명을 위협하지만 아는다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대게는 나만 극복하면 된다. 그러면 평생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친구들도 배우자도 심지어 자녀도 모두 낯설었던 시절이 있었다. 낯선 상황의 심박동은 희열의 심박동과 다르지 않다. 가슴 떨리는 순간이 많아지는 건 덤이다.


처음부터 잘하려 하지 말자

특별한 재능을 가지지 못함이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천재적 역량을 가졌다면, 그렇지 못한 일에는 관심을 가지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쉽게 되는 일을 두고, 노력해야 하는 길을 선택을 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뭐든 대가를 치러야 그나마 적응되는 유전자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데는 도움이 된다.


스키도 그랬다. 운동 신경이 좋은 이들이 혼자서 스키장을 누빌 때, 운동 지진아는 코치를 줄 곧 따라다니게 된다. 덕분일까. 기초가 충실해지고, 어느 순간 운동 신경을 넘어서는 경험을 한다. 잘 배우면 최고는 못 될지 몰라도 잘 즐길 수 있다.


자존심은 잠시 뒤로 하자

영어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재수 시절, 딱 하나의 목표가 새워진다. 영어 정복. 단과 반을 등록하러 간다. 비슷한 실력의 친구들이 종합 영어 수강을 신청할 때,  기초 영어반을 선택한다. 놀라운 경험을 한다. 6년을 괴롭힌 영어를 보름 만에 친숙해진다. 


취미도 보여주기로 만드는 세상이긴 하다. 보여주기용은. 몰입의 즐거움 없기 스트레스다. 힐링은 기대하기 힘들다. 살아 있는 생동감도 없다. 그저 수많은 타인의 눈만 존재한다. 나 좋으려고 하는 일에 타인의 시선은 출입 금지시켜 버린다.


그냥 느껴보자

역마살은 기본 장착되어 있음은 알고 있었다, 사막을 달리는 즐거움이 그리 클지는 몰랐다. 처음 해외 출장이 실리콘 밸리였던 건 축복이다. 렌터카 회사에서 제공한 어설픈 지도로 파시픽 글로브를 찾아 나선 것도 행운이다. 길을 잃고 황무지를 헤맨 그 순간이 사막 드라이브에 대한 애정을 키운다. 길을 헤매는 스트레스를 덮어버릴 정도다. 있는 그대로를 느끼기 위해서는 목표는 거추장스럽다.


의미 부여는 좋아하게 되면 그때 하자

논리는 참 좋은 친구다.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인문학은 수학도 과학도 아니다. 부정적으로 사용되면 합리화 일지 몰라도,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최고의 벗이기도 하다. 영화를 좋아한다. 보는 순간 의미 파악에 몰두하면 힘들어지곤 한다. 편안하게 주인공과 마음에 드는 조연과 동행한다. 다시 보고 싶어질 때, 그때 감독과 작가에게 다가가 본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인생 영화가 된다. 의미는 그저 거들뿐 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나에게 발목을 잡히지 말자

내성적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첫 입사 연수 때, 왜 팀의 대변인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주어진 일이고, 나로 인해 팀이 손해가 생기는 걸 바라지 않는 마음뿐이다. 연기자가 주인공인 만화를 떠올린다 (좋아하는 만화가 쓸모가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배우가 되어 보기로 한다. 마침 이 공간에는 나를 아는 이도 거의 없다. 눈을 딱 감고 연기자 모드로 돌입한다. 말 문이 트이기 시작한다. 이후, 강의까지 하게 되고 제법 말 좀 하는 강사가 된다.


성급한 나에 대한 정의는 성벽을 높이 쌓아 올리고, 문을 더욱 견고하게 닫을 뿐이다. 좋아하는 일은 적이 아니다. 친구다. 친구를 맞이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고정관념을 내려놓기도 한다. 


오래 살고 싶다. 더 많이 알고 싶다. 얼마나 더 많은 좋아하는 일들을 발견하게 될까. 세상의 변화도 반갑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경험으로 넘쳐날 듯하고, 그 안에 또 얼마나 많은 나를 끌어당길 일들이 있을지 기대된다. 설렘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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