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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PD Sep 05. 2021

'잘한다'의 함정

사회, 경제 활동을 위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등학교는 진로 결정을 위한 첫 관문인 이과, 문과 사이의 선택을 요구한다. 인생 선배인 부모님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지리와 역사를 좋아하기에 문과로 기울어진 마음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에 좌절된다. 경제적인 풍요를 얻고 원하는 일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수정한다. 경영학으로의 선회다. 공대에서 기술적 배경을 쌓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편이 수월하다는 조언을 받아 든다. 어문학보다는 수학 성적이 좋았던 이유도 한 몫한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기준으로 사회, 경제 활동을 준비하게 된다.


'잘한다'에서 출발한 '좋아한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갔던 스케이장에서 친구들보다 잘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된다. 활을 잡아본 그날,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비교 우위를 지켜내는 꾸준한 노력을 더한다. 금메달을 획득한다. 떡잎부터 달랐고, 결과도 남 달랐던 이들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듣게 된다. 어린 시절 그림 신동 소리를 듣고,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이들의 이야기는 작은 물결만 남기고 사라진다. 모차르트와 만난 살리에르도 영화가 아니었다면 잊힐 뻔 한 황실의 음악가다.


어린 시절의 떡잎이 거목이 되기까지, 꾸준함은 기본이다. '잘한다'는 말에는 '누구보다'라는 의미가 담긴다. '잘한다'의 토양에서 자라난 '좋아한다'는 넘사벽 앞에서 위기를 맞이 한다. 하락 장에서도 투자한 회사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는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주변의 인정, 자신감이 사라지는 중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내는 의지력은 평범하지 않다. 사그라들고 있는 '좋아한다' 대신, 사회, 경제적으로 유리한 위치라는 사회적 확신이 연료가 되어준다. 비교는 스트레스를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사법 고시나 의대의 높은 벽을 넘은 이들은 영웅이 된다. 벽 아래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은 패자의 변명이 된다.


프로그램의 세계로 인도해준 친구를 넘어선 성적표를 받아 든다. 포커 이외에 밤을 지새운 일이 없었지만, 코딩으로 새벽을 맞이하곤 한다. 대학원 시절, 아래아 한글의 핵심 개발자를 선배로 만난다. 신의 경지다. 다행히도 좌절감보다는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여겼는지 무사히 통과한다. 직장 생활 중에 개발한 프로그램들은 인정과 보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흥미가 줄어든다. 도전 의욕이 사그라든다. 프로그램을 좋아했다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즐겼음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시간은 남아 있어 다행이다.


'좋아한다'가 가져온 확장성

'좋아한다'는 확장성이 높다. 농구에 대한 애정이 전문 기자, 구단주, 해설가, 응원 단장을 만든다. 여행에 대한 사랑이 작가로서의 성공으로 이어진 예는 한비야만은 아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며 가르치는 꿈을 꾸던 어린 시절,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강의는 하나의 선택으로 자리 잡는다.


음반을 발매하고 어느 정도 인기를 누리던 가수가 있다. 그 후로는 이렇다 할 히트곡은 없었지만 유학을 가면서 음악을 이어간다. 영화 음악을 마지막으로 음반 취입을 중단한다. 후배들을 찾고 키우기 시작한다. 좋은 음악을 선별해내는 귀와, 작곡, 노래, 춤에 능한 후배를 보는 눈의 조화는 비교 대상이 없는 '잘한다'를 창조한다. 역경이 찾아온다. 애제자들의 실수와 이별도 겪는다. 높은 파도를 이겨내며 한국 아이돌의 세계를 여는 기획자가 된다.


'비교' 함정 피하기


박진영이 말하는 엄정화는 노래, 춤, 미모만으로는 스타가 되기 어려웠을 수 있지만, 그녀만의 매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 낸 경우다. 매력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객관성이 끼어들 공간이 좁은 곳에 수치화와 비교가 자리하기는 쉽지 않다. 열정은 매력을 증폭시킨다. '좋아한다'는 열정의 연료가 되어준다. 롱 테일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세상까지 열려 있다.


신인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성시경과 너무나도 닮은 가창력을 가진 참가자가 있었다. '매력'의 고속도로에서는 고성능 스포츠카로도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닮은꼴은 산업 시대에서와는 달리, 생존 전략으로 적합하지 않다. '잘한다'와 '좋아한다'의 조화를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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