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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PD Oct 14. 2021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논과 밭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조심스레 운전해 나간다. 길을 잘 못 들어 제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질을 잘 못 들었던 작은 삼거리를 조심스럽게 지난다. 작은 재를 넘으며 전화로 길을 다시 묻는다. 표지판이 서 있는 위치가 혼란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목적지다. 사람의 흔적을 찾기 쉽지 않은 깊은 산속의 목재 주택 앞이다. 디지털과 코로나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는 부부의 아지트다. 두 마리의 고양이와 두 마리의 댕댕이와 함께 하는 가벼운 티타임, 그리고 숲 속 산책. 해가 지고 불가에 모여 앉아 본론인 수다를 시작한다.


젊은 시절, 유년기의 아픈 기억과 투쟁하듯 살았다는 그녀는 그를 만난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질문을 받게 되었단다, "과거를 빠꿀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오랜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연애 스토리다.


어느 책인가에서 읽은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두 아들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친다. 한 아들은 아버지에도 불구하고 변호사가 되었고, 또 한 아들은 아버지 때문에 형무소를 드나든다.


재수에도 불구한 대입 실패 후 한 달간의 방구석 생활도 스스로를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기 대학 지원서를 들고 집을 나서면서도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학 4년 동안도 불편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문 모임도 친구의 억지가 아니었다면 피하고 싶었다. 원하던 대학원으로의 진학과 우여곡절로 가득 찬 사회생활 속에서 서서히 그 시절은 추억이 되어간다. 이력서의 출신 대학 이름은 변하지 않는다. 짙은 안갯속을 달리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채우는 형용사와 부사들은 달라진다.


내비게이션이 고난도의 끼어들기를 권유할 때는 차선을 유지하기도 한다. 안전하게 교차로를 지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유턴을 추천받는다. 좌회전을 놓친 결과다. 같은 길을 가기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 조금은 돌아갈지 몰라도 길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세상이 그곳에 있다. 그렇다고 목적지를 바꾼 건 아니다.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삶이다. 가끔은 예기치 못한 행운도 따른다. 그렇다고 간혹 있는 행운을 위해 내비게이션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가야 할 길을 걷다 보면, 문득 과거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 있다. 나란히 걷다 보면 눈빛만으로 충분한 관계가 된다. 치고받고 싸웠던 과거와 곁에 없으면 허전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아직도 불편한 동행들이 있다. 고개를 돌리기가 꺼려지기도 한다. 더 오래된 동행들의 왠지 모를 편안한 눈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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