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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PD Aug 06. 2021

끝의 시작

때론 멀리, 때론 가깝게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몰입감을 주지 못하면 사라진다. 레벨 구성을 가진 게임이 다수다. 자신에게 맞는 레벨을 찾아서 도전을 하다 보면 적당한 긴장감과 스트레스, 성공과 실패의 경험, 성취감이 생기고, 다음 레벨 도전 욕구가 생긴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빠져든다.


학창 시절, 비교 대상은 일등들이다. 엄친아는 다른 레벨인데도 나란히 세워진다. 의욕은 떨어지고, 기분이 나빠진다. 패배만 쌓이는데 도전 의지가 생기면 일반적이지 않은 심리 상태다. 포기는 기본이 되고, 도전은 패배감을 덮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다.


시오나 나나미는, 동방을 제패한 알렉산더가 서쪽을 향했다면, 유년기의 로마가 세계 역사의 주인공은 고사하고 생존 여부가 불투명했을 거라 말한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후, 지중해를 지배하던 카르타고와 본격적인 만남을 가진다. 바다는 처음이었지만, 로마는 육지에서의 강점을 활용한 까마귀를 통해 카르타고를 누르고 지중해의 최고 강자가 된다. 적당한 시기에 최대 강적을 극복할 기회를 가진 천운이다.


스키 강사들은 강습을 시작하고 두 시간 안에는 차 상위 슬로프를 경험하게 하곤 한다. 하지만 한 번이다. 반복되면 좌절감만 쌓일 뿐이다. 수준에 맞는 슬로프로 돌아오면, 두려웠지만 설렘을 남긴 경험은 배워야 할 부분들을 쉽고 빠르게 습득하는데 보탬이 된다.


스스로를 최고 수준 옆에 두려 하지 않으려 한다. 한 번쯤 옆에 서 볼 때도 있지만, 나에게 적합하고, 필요한 레벨은 달리 있음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려 한다. 자기 보호 본능이다. 그래야 갈대 같은 심리 상태를 조금이라도 지탱할 수 있다. 작은 매듭이라도 지어 보려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세콰이어 국립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너럴 셔먼 트리가 살고 있다, 주변에는 100m에 가깝고, 성인 몇 명이 손에 손을 잡아야 둘레를 알 수 있는 나무들이 즐비하다. 사진에 담으려는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숲이다. 지나온 세월은 밑동만 남은 나무의 나이테를 보아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끝을 정하고 시작한다. 최종 목적지를 향한 중간 매듭을 시작한다. 정상만 바라보면 목만 아프다. 한 발 앞만을 보기도 한다. 목이 결린다. 때론 멀리, 때론 가깝게 시선을 둔다. 목도 눈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지금의 한 발의 의미와 동행하다 보면, 또 다른 한 발을 내딛기도 편안해진다. 그렇게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나이테는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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