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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May 20. 2024

작은 세 고을에서 시흥이 시작되다

시흥·과천·안산이 합쳐지다

서울시 서남권의 가장 큰 시가지 영등포를 필두로 하여, 관악, 구로, 금천, 동작, 그리고 강남에 뻗은 서초까지.

그리고 이 지역과 맞닿은 경기도의 도시들, 과천, 광명.

또 과천, 광명과 맞닿은 시흥, 안양, 더 멀리 안산, 군포까지.

이 열두 구와 시들에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그 옛날 일제시대 “시흥군”으로 묶인 한 고을이란 것이다. 궁금하다면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역사를 찾아보시라. 아래 스크린샷은 오늘(2024년 2월 10일) 서초동, 영등포구, 군포시 역사 홈페이지에서 잘라온 것이다.

그러므로 구로, 관악, 금천, 동작, 서초, 영등포, 과천, 광명, 군포, 시흥, 안산, 안양 열두 자치단체들은 모두 “시흥군의 열두 딸들”인 것이다. 지금의 시흥과 옛날 시흥이 헷갈리긴 하지만 귀찮으니 앞으로는 “시흥의 열두 딸들”이라 부르겠다. 이 시흥의 열두 딸들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시흥은 부천과 의왕의 역사에도 그 흔적을 남겼으니 넓게 보자면 시흥의 열네 딸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번 시리즈는 이 시흥군에서 열두 딸들이 태어나는 역사를 다루는 시리즈다.


시작은 미약했다.

한강 너머 높으신 분들이 사시는 한성, 한양, 또는 이른바 서울.

동남쪽으로는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남한산성이 있는 큰 고을 광주.

서쪽으로는 역시 전통의 큰 고을 부평.

그 사이에 시흥, 과천, 안산이라고 하는 작은 고을들이 있었다. 이들이 작은 고을임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조선 시대에 시흥은 한때 금주, 과천은 과주라 했는데, 조선시대 큰 고을에만 설치하던 도호부가 없는 지역 이름의 '주'는 모두 '천'으로 고치도록 하면서 금주는 금천, 과주는 과천이 되었다. 그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금천구와 과천시가 되었다. '주'는 본디 중국에서 지방을 크게 나누어 9주니 13주니 하던 것인지라, 지금도 미국이나 독일 같은 연방국에서 나라에 준하는 큰 권한을 가지는 큰 지역을 '주'라고 한다. 당시 조선도 마찬가지로 주는 큰 고을에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주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지역들의 이름을 그에 걸맞게(?) 격하한 셈이다.

한편 시흥, 과천, 안산을 둘러싼 광주와 부평은 그 크기에 걸맞게 도호부였고, 지금까지도 광주는 '주'다.

그렇게 광주와 부평 사이에 낀 작은 세 고을들의 역사가 격변하는 것은 근대의 시작에 들어와서였다.

조선의 행정구역의 분포를 보면 군현 간의 불균형이 꽤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면적이 비슷한 경주시와 포항시를 예로 들어보자. 포항시는 조선 시대의 연일, 장기, 청하, 흥해 4군에 경주의 외곽 일부까지 묶어서 만든 영일군의 후신이고, 경주시는 오히려 조선 시대의 경주군보다도 조금 작아졌다. 네 군이 하나로 묶인 포항시와 한 군이었던 경주시가 서로 비슷비슷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많이 사는 큰 고을을 더욱 크게 밀어주는 경향이 있던 것도 있다. 지금이야 경주가 작은 도시지만 그건 신라 유적들 때문에 개발을 못 해서 그런 거고, 신라의 서울(서울의 유래 자체가 경주의 옛 이름인 서라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이니만큼 경주는 전통적으로 경상도를 대표하는 큰 고을이었다. 경상도란 이름의 '경'도 경주의 '경'이다.

서울의 동남부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알 수도 있지만, 지금의 성남, 하남, 괌주 세 도시가 원래는 광주군이라는 하나의 군이었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광주군은 더욱 커서 지금의 의왕에 수원을 지나 화성 북부의 바다까지 그 관할 구역이 미쳤다. 그래서 지금과는 달리 시흥, 안산, 과천의 동쪽과 남쪽이 통으로 광주와 맞닿아 있었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근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정신없는 행정구역에 조금씩 손을 보기 시작했고, 이는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물이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부군면 통폐합이었다. 위에서 예를 든 포항과 경주가 서로 균형을 맞추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부군면 통폐합의 결과 시흥, 안산, 과천 3군은 시흥 하나로 합체되었으나, 삐쭉삐쭉하게 튀어나온 광주군의 서남부 땅거스러미를 편입해 왔던 안산군 땅은 수원군에 넘겨주었다. 이것이 현대 열두 딸들을 낳은 시흥군의 시작이다. 시흥(始興)이란 이름의 뜻 자체를 한자로 풀어보면 '일어나기 시작하다'인데, 이제 시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커버 이미지 지도의 정체는, 바로 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흥군 지도다.

1914년 당시의 시흥군. 회색 경계는 지금의 서울특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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