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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May 21. 2024

시흥의 셋째 딸, 관악구

거대한 영등포구의 첫 분할

이번에는 시흥의 셋째 딸, 서울시 관악구다.

관악구라는 지명이 기원하는 관악산 일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1963년 서울 대확장 때 영등포구로 옛 형제였던 시흥군 동면과 신동면이 편입되었다. 한편 이때 영등포구는 부천군에서 소사읍과 오정면을, 김포군에서 양서면과 양동면까지 편입해, 지금의 서울 강서구부터 서초구까지의 여덟 구를 관할하는 무시무시하게 큰 구가 되었다. 이렇게 컸기 때문에 기존 영등포구청에서 모든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서, 관악·신동·오류·양서·양동 다섯 출장소를 두어 각 지역의 행정업무를 나눠 맡게 했다. 분리 당시의 관악구, 그러니까 지금의 관악·동작·서초 3구는 관악과 신동 두 출장소에서 나누어 맡았다.

1963년 서울 대확장으로 넓어진 영등포구. 서울 서쪽과 남쪽이 모두 영등포구다.

1967년, 관악과 신동 두 출장소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서울의 인구 증가로 인해 영등포구는 무시무시한 업무 폭증을 겪었고, 행정에서 소외돼 불편을 겪는 주민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영등포구에서 관악구가 분리될 당시의 기사를 살펴보자.

53.835 km2의 면적 중 도로 총연장 545 km가 차지하는 비율이 고작 2.8%(서울시 도로율은 10.74%)이고 그것도 포장된 도로가 전체의 20%밖에 안 되는 관악구는 6만 6천 7백 59동의 건물이 있으나 그 가운데 정상적인 것이 2만 8천 6백 83동으로 전체의 42.9%밖에 안 되며 나머지 57.1%인 3만 8천 76동이 불량건물이라는 점 하나만 들어도 이곳이 얼마나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는 지역인가를 알 수 있다.
더구나 이곳 주택들의 대부분이 산비탈이나 고지대에 밀집해 있어 56만 6천 8백 20명의 주민 중 50.5%밖에 급수 혜택을 받지 못하며 장마철이면 축대 붕괴, 산사태 등이 잦고 화재 위험이 많으며 소방도로도 제대로 뚫리지 않아 화재가 나도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취약점도 안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하수시설이 좋지 않아 여름이면 각종 질병의 발생 위험이 가장 많은 곳이며 청소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해 전체 지역의 55%가 수거지역이고 나머지 45%는 비수거지역으로 서울 시민이면서도 주민의 반 정도가 서울시의 모든 행정 혜택을 못 받아 온 행정사각지대였다.
관악구 분리 이후의 난곡 간선하수도 공사.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서울역사박물관(https://museum.seoul.go.kr)의 공공저작물 이용.

관악구 일대의 인구 급증은 동사무소 증설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디 관악구 일대가 영등포의 일부로서 서울에 편입되었을 무렵, 봉천동과 신림동은 모두 봉신동사무소 하나에서 관할했다. 그러나 1970년 5월 5일, 봉신동 하나에서 전부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봉천 1·2·3·4동, 신림 1·2·3동 무려 일곱 동사무소를 새로 설치해야 했다. 원래 두 동만 있을 정도로 해방 당시까지 전통적으로는 작은 마을에 불과한 관악구는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몰려드는 인구들로 바글바글해졌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봉천과 신림 두 법정동(주소의 기준이 되는 동)에는 무려 20개의 행정동(주민센터의 기준이 되는 동)이 있다. 이나마도 현대에 관악구 인구가 줄어든 결과고 가장 많을 때에는 무려 26개의 행정동이 있었다.

1973년의 영등포구 분할. 관악구 이동의 옛 시흥군 땅은 성동구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영등포구에서 관악구가 분리되었다. 시흥의 셋째 딸, 관악은 이렇게 안양과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한편 옛 신동면 중 사당동을 제외한 동부 일대는 성동구로 넘어갔고, 나중에 서초구의 기반이 된다. 지금은 다들 서초를 강남이라고 생각하지만, 원래 서초는 영등포였다(!)

관악구 분리 직전 영등포구의 인구는 139만 7610명에 달했는데, 이에 버금가는 많은 인구를 관할한 구는 같은 시기에 쪼개진 110만 9850명의 성북구고 영등포의 기록에 도전할 구는 전무후무하다. 신설된 관악구의 인구는 60만 6007명이었다. (1973년 3월 2일 조선일보 1면)

이후에도 관악구는 서울대학교 캠퍼스 이전과 함께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 공간이 공급되면서, 현재는 구 북쪽을 나중에 동작구로 분리하고 나서도 2023년 인구수 48만 1956명에 달하는 서울 내의 대표적인 베드타운이 되었다. 동작구와 합치면 2024년 인구는 약 86만 명까지 이른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서울대와 관악산 주변에서 자연보호 활동을 하는 모습.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서울역사박물관(https://museum.seoul.go.kr) 공공저작물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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