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의 존재이자 현실의 이웃
전 글에서는 시흥의 딸들 중 경기도에 남은 시들의 통합 움직임을 살펴봤다. 한 번은 시흥의 딸들을 전부 통합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생활권이 일치하는 안양·군포·의왕·과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때 〈군포시, 안양시, 의왕시 통합에 관한 연구〉에서는 시흥권 통합에서 논외로 취급되는 광명·과천·시흥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고 소개했다.
“여기서 광명시와 과천시는 사실상 서울이나 다름없고 시흥시는 주변지역의 시승격과정에서 비지적인 문제가 있어 분리된다 하여도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등은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는 지역임”
다시 말해, 광명시와 과천시가 바라보는 지역은 시흥군에서 태어난 다른 자매도시들이 아닌 서울인 것이다. 둘 다 서울특별시의 1963년 도시계획에 포함된 곳으로, 여건만 되었다면 향후 서울에 통합되었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위성도시 육성 정책에 따라 서울 편입에서 제외되었는데, 이는 안양시 도시계획에 포함되었으나 안앙시 편입이 아닌 독자적 시 승격의 길을 걸은 군포시와 의왕시와 비슷하다.
광명시와 과천시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에 포함되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후의 개발 과정은 다르다. 과천시는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에 포함되어 정부과천청사 설립 이전에는 오랫동안 한적한 시골 신세를 면치 못했으나, 광명시는 구로공단의 배후 주거지로 일찍이 개발되어 서울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과천의 개발은 과천을 서울의 위성도시로 육성하고자 진행되었으나, 광명의 개발은 광명이 서울에 편입될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 진행되었다. 그 때문에 시로 독립할 당시 광명시민 대부분은 광명시민이 아니라 서울시민이 될 것을 기대하고 이주해온 사람들이었고 토박이나 구 시가지 소하리의 이주민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1980년 초에는 광명시 서울 편입 2만 명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광명시 승격 당시 대놓고 “서울편입 좌절”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갈 정도였다.
지금도 광명은 경기도 도시이면서도 행정 서비스에서 서울권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서울 전화번호 국번인 02를 쓰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광명·학온·철산동 지역은 KT개봉지점(구 개봉전화국), 하안동·소하동 지역은 KT금천지점 관할 구역이다. 수도권 도시철도 7호선의 광명사거리역과 철산역은 서울 밖에 있으면서도 서울의 역처럼 취급되어 서울 정기권과 기후동행카드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처음 지을 때부터 서울시 돈으로 지은 역들이다. 광명7동에 있는 영서변전소는 남서울전력관리본부에 소속되어 있다. 이 변전소는 광명뿐만 아니라 서울 한강 이남 강서의 일곱 구와 안양시, 부천시 일부 지역까지 담당하고 있어, 2017년 변전소에 이상이 생겼을 때 구로·관악·금천·영등포·광명 지역에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생활권은 서울 구로·금천과 함께하고, 교통도 다른 경기도 도시보다는 서울 가기가 편한 광명인데, 2006년 지방행정체제 개편 기본법 때 광명을 부천과 통합한다는 광명시민에게는 경악할 만한 발상이 나왔다. 이 개편에서는 시와 시를 통합해 100만 명 규모로 만드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시흥의 다른 딸들은 안양·군포·의왕·과천, 안산·시흥으로 묶이는 와중에 광명만 갈 곳이 없어져 부천에 갖다 붙인 것이다. 수도권 전철 7호선이 부천으로 연장되어 광명과 부천 왕래가 편해진 지금조차도 광명에서 부천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서울을 통과하는 것이니, 이 조치가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광명 지역은 부천의 다른 지역에서 직접 가기 어려운 실질월경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안을 들은 광명시민들은 부천과 통합하느니 어차피 도를 폐지하기 위한 행정체제 개편인데 영등포나 구로·금천과 통합되어야 마땅하다는 반응이었다. 이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좌절되었지만, 시흥시 북부 구 소래읍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천에겐 이후로도 부천과 시흥을 통합하는 김에 광명도 부천으로 통합하자는 발상이 가끔씩 떠오르게 만들었다.
부천과 광명 통합안의 역효과인지 이후 광명에서는 가끔씩 서울로 편입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안양·군포·의왕·과천 통합을 다시 시도하게 한 2009년의 행정구역 개편안 때 광명시 서부 일대를 대표하는 광명시 갑 국회의원 백재현은 서울로 들어간 시흥의 딸들이자 그 중에서도 광명시와 함께 조선시대 시흥군의 일원인 구로구 을의 박영선·금천의 안형환·관악구 을의 김희철 국회의원과 함께 광명시를 서울시로 편입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때 백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행정구역 개편 찬성이 47.6%였으며 개편 방식에서는 구로·금천과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74.1%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에도 백 의원의 의뢰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5.4%가 광명시 서울 편입에 찬성했고, 행정구역에 대해서는 53.6%가 광명구 신설을 원한다고 답해 광명시에 서울 편입 정서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백 의원은 2009년 당시에는 양기대 광명시장도 서울 편입에 적극 찬성했다고 주장했지만, 시에서는 KTX역세권 개발과 광명동굴 테마파크의 성공 등으로 광명시가 독자적인 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결국 광명시의 서울시 편입 운동은 2009년에 이어 2015년에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3년 여당에서 주장한 김포시 서울 편입 운동은 서울시의 다른 위성도시에도 메가서울에 참여할 것이냐 마냐라는 파장을 던졌다. 이 사건은 광명시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다른 서울 접경 위성도시들 대부분 시장들이 여당 소속인 반면 광명시만 야당 소속이었고 홀로 서울 편입에 반대했다. 이에 김포·광명·구리·하남시 시민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허니문 기간에 치러져 대부분 지역에서 여당이 선전한 8대 지선에서도 야당 시장을 선출한 광명시였고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당 시장을 뽑은 다른 세 시에 비해 가장 찬성이 저조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55%가 찬성해 43%의 반대보다 10%p 이상 높았는데, 이는 광명시에서 서울 편입 정서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명시에게 서울은 되고 싶은 갈망의 존재이지만, 현재 광명시는 서울이 되지 못하고 있고, 인접 지자체이자 옛 한 가족인 서울시 구로·금천구와의 관계 맺기는 현실이다. 비록 시·도 경계로 갈려 있지만 긴밀하게 이어져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을 수는 없고 그 사이에서 협력도 있고 갈등도 있었다.
광명시와 구로구는 협력의 모범 사례를 하나 남겼는데, 바로 환경기초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기로 한 2001년의 환경기초시설빅딜이다. 구로구는 자체 쓰레기 소각장이 필요했으나 광명시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었고, 광명시는 광명시대로 기존에 사용하던 가양하수처리장의 용량 문제로 서울시에서 하수 처리를 거부하자 시 자체적으로 새로운 하수처리장 건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쓰레기 소각장과 하수처리장 간의 교환 방안이 떠올랐고, 구로구와 광명시는 물론 상급 단체인 서울특별시와 경기도까지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두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했다. 그 결과 광명시 자원회수시설에서 구로구 쓰레기까지 맡아 처리하는 대신 서울시에서 가양하수처리장의 용량을 늘려 광명시 하수를 더 받아주는 빅딜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광명시 자원회수시설 주변 주민들이 집단농성과 시위를 벌이자, 광명시에서는 시장을 포함한 전 직원이 대화에 나서 주민들을 설득했고 주민지원기금까지 약속해 구로구 쓰레기를 시설에 반입해 처리할 수 있었다.
이 빅딜로 광명시는 하수처리장을, 구로구는 쓰레기 소각장을 건립하지 않아 혐오시설 건립으로 인한 비용 부담과 유발 민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또 광명시는 쓰레기 처리 지원금을 서울시에서 받아 세수를 늘릴 수 있었다.
이외에도 광명시민들이 서울시를 자주 오가는데 택시 사업구역은 서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승차 거부와 부당 요금 징수, 합승 등의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경기도가 여러 차례 진통 끝에 협의에 성공해 광명시는 서울시 구로구·금천구와 택시 사업구역을 통합했다. 1999년부터 4차에 걸친 시범 운영을 시행하고 2003년 12월 31일 영구 통합이 결정되어 2004년 1월 1일부터 공식 시행되었다. 주민 의견 조사에서는 이 세 지자체뿐 아니라 영등포·양천·관악구 시민들까지 찬성했지만, 서울시 개인택시조합의 사업 구역 통합 반대로 더 확대되지는 못했다.
서울시와 광명시 사이에 좋은 이야기만 오가지는 않는다. 최근 두 지자체가 격렬하게 대립한 사건은 바로 구로차량기지 이전이다. 구로구는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꼽히는 구로차량기지를 이전하고 그 터를 개발하고자 해 구로차량기지선을 이전하고자 했고 이 사업이 확대되어 인천까지 도시철도를 잇는 제2경인선 사업이 개시되었다. 이 구로차량기지 이전 예정지가 바로 광명시 노온사동이었다.
광명시는 새 차량기지 예정지에서 250 m 떨어진 곳에 노온정수장이 있으므로 식수원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계속 차량기지 이전에 반대해 왔는데, 2017년 서울시의 타협안을 받아들여 지하화를 요구하고 또 광명시내에 5개 역을 추가한다는 전제 하에 조건부 찬성으로 주장을 완화했다. 그러나 국토부에서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하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3개 역 추가에만 그쳤다. 이 타당성 재조사 결정 이후, 광명시는 조건부 찬성에서 전면 반대로 돌아섰다. 결국 구로차량기지 이전 문제는 2020년 이후 구로구와 광명시 지역 정계의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3기 신도시 계획에 이 노온사동이 포함되면서 광명시의 반발은 더욱 커져 나갔다.
2023년 5월 9일,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는 구로차량기지 이전을 ‘타당성 없음’으로 결론을 냈다. 경제성 문제가 아니라, 구로구와 광명시 간의 첨예한 의견 대립 때문이었다. 20여년 전 협력으로 시너지를 낸 구로구와 광명시였지만, 그때와는 달리 구로구와 광명시의 이해관계 조율에 실패한 결과였다.
그렇게 오늘도 시흥군의 열두 딸들은 한때 한 군이었던 만큼 지금도 교류가 많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헤쳐 모여를 반복하고 있다.
김지영: 光明市(광명시)「서울編入(편입)」좌절에 새꿈가꾸어 53개里洞(이동)에 現在(현재) 인구는 15萬(만) 경향신문 | 1981.03.30 기사(뉴스)
민성혜: 번화한 도심이 되기까지 - 디지털광명문화대전
홍성철: 서울 남서부 지역·경기 광명시 등 대규모 정전 사태 야기한 영서변전소 어떤 곳? 일요신문 | 2017.06.11 기사
이승봉: 광명시, 부천과의 통합보다는 영등포구, 구로구와 통합되어야 광명시민신문 | 2006.02.15 기사
장성윤: 광명이 부천과 통합된다? 광명지역신문 | 2006.02.17 기사
박주성: “부천·시흥·광명 3개시 통합추진” 경향신문 | 2010.01.13 기사
김부삼: 백재현 “광명시, 서울 편입 법안 발의” 시사뉴스 | 2009.09.16 기사
최찬흥: 백재현 의원, ‘광명, 서울 편입’ 특별법 발의 한겨레 | 2009.09.09 기사
이종일: "광명시민 85% 서울시 편입 원한다" 뉴시스 | 2015.10.14 기사
이승재: 광명→서울시 편입, 광명시민 85.4%가 찬성! 문화매일신문 | 2015.10.19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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