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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May 20. 2024

그때 그랬다면? - 영등포부 승격

영등포광역시를 상상하다

1936년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 일제는 시흥군 영등포읍을 경성으로 편입시켰지만, 영등포의 일본 유지들 중에서는 영등포를 부로 승격시키자는 주장이 있었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영등포부가 설치되었다면 이후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구글 지도로 나타낸 당시 시흥군의 지형도. 군 한가운데에 관악산과 수리산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영등포읍이 따로 영등포부로 독립해 나가는 것, 다른 하나는 시흥군이 통째로 시흥부나 영등포부가 되는 것이다.

영등포읍이 따로 영등포부가 되었다면, 인천시처럼 따로 영등포시로 있다가 역사처럼 서울이 크게 확장될 때 서울에 편입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역사와 큰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시흥군이 통째로 시흥부나 영등포부가 되었다면? 정부에서도 서울을 확장하기보다는 (가칭) 시흥부를 서울의 공업 기능을 나눠맡는 위성도시로 육성했을 가능성이 영등포읍 단독으로 있을 때보다는 컸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영등포 일대뿐만 아니라 동작, 구로, 시흥, 나아가 광명까지 이어지는 공업지구와 공단의 배후 주거지구로 개발되는 대형 공업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80년 인천이 직할시로 경기도에서 독립할 때 시흥도 마찬가지로 직할시가 되어 경기도 서부는 인천과 시흥이라는 두 개의 큰 광역시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양천은 서울 대신 시흥으로 편입되고, 부천은 다른 경기도 지역과 단절되므로 인천과 시흥으로 분할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대략 지금의 시흥시 영역에 해당하는 구 소래읍 지역이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시흥에 편입될 것 같다.

그러면 저 지도의 시흥군이 통째로 시흥광역시가 되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형을 보면 시흥군의 중심에 관악산과 수리산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두 산들은 영등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개발 흐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며, 설령 이 장애물을 넘어갔다 하더라도 이 산들로 인해 시흥의 북서부 - 동부 -남부의 교통에는 여전히 큰 장벽이 된다. 그리고 이 산들은 옛 과천 - 시흥 - 안산의 경계와 대략 일치한다.

따라서 이 가정에서 시흥이 크게 발전되면 자연히 북서부 - 동부 - 남부에 서로 독립적인 시가지가 나타날 것이고,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를 분할 승격하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안산과 과천 일대는 시흥에서 분리되어 원래의 제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며, 구 시흥만이 시흥광역시로 승격할 것이다.

시흥, 안산, 과천이 따로 독립하고 양천과 부천을 편입해 시흥광역시가 설치되는 가상 지도. 회색 선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이렇게 되면 우리는 수도권은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와 경기도가 아니라,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와 시흥광역시와 경기도라고 배울 것이다. 시흥은 지금의 시흥시가 아니라 영등포 일대를 부르는 별명이 될 것이고. 시흥시청은 양천과 부천에서도 편하게 이용하기 위해서 지금의 영등포구청 자리나 더 서쪽으로 갔을 수도 있겠고, 광명과 소래 일대를 배려해 옛 시흥군의 중심지, 곧 시흥동으로 갔을 수도 있겠다.

덧붙여, 시흥광역시가 독자적인 발전을 하면 자연스럽게 구 시흥군의 중심인 지금의 금천구도 체계적인 개발 계획을 거쳐 발전해, 지금처럼 서울의 낙후 지역이라는 오명은 벗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상은 지도만 보고 쓴 나만의 상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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