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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누나 Jun 13. 2017

목욕탕 이야기

6/12/2017 진정한 한류

우리 목욕탕에는 50도씨 내외의 자수정 습식 사우나와 84~5도씨 정도의 게르마늄 건식 사우나가 있다. 

80도가 넘는 건식 사우나에서 호흡을 하다보면 비강부터 폐까지 익는 느낌이다. 난 숨도 잘 못 쉬겠다. 물론 목욕 만렙 언니는 건식 사우나를 꼭 하신다. 만렙 언니가 있으면, 그녀를 종종 쫓아 들어가 누워 나무동이에 종아리 마사지를 하는데 꼭 찬 수건을 얼굴에 대야지만 가능하다.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 무념무상이 된 채 목욕을 하고 있는데 그 무지막지한 건식 사우나에서 새카만 머리의 젊은 여자가 한명 나왔다. 좋은 몸매에 태닝을 하는지 궁둥이에 팬티자국이 남아있어서 '아주 hip한 여자군.' 싶었다. 그녀가 외국어를 쏼라 쏼라 하더니 뒤이어 노란 머리 외국인이 나왔다. 먼저 나온 새카만 머리의 여자도 외국인이 었는데 한국을 좋아하는지 머리를 검게 염색한 것이었다. 암튼 그녀들은 그 지옥의 열기에서 나와 냉탕에 몸을 담궜다. 


그리고 열탕을 갔다가 내 옆에 맡아놓았던 샤워기로 왔다. 목욕을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안해왔길래 나는 대번에 저들이 관광객이라는걸 알았다. 나누는 언어로 보아하니 러시아인같았다. 목욕탕에 기본 세팅되어 있는 비누로 몸을 닦더니 자꾸 위를 올려다본다. 우리 목욕탕엔 세신하는 곳이 윗층이다. 세신사 아줌마들은 다른 사람들을 미느라 아직 바쁘다. 그녀들은 열탕에 가서 잠시 있더니 곧 때밀이 아줌마의 사인을 받았는지 윗층으로 올라갔다. 


나란히 엎드린 두 젊은 여인네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때를 밀면서 수다를 떨었다. 염색녀가 한국을 좋아하나 싶었는데 놀랍게도 노란머리 여자가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때밀이 아줌마가 옵션을 제시했더니 몇가지 했나보더라. 그리고 아줌마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운 경험을 하는 듯 했다.


우리 동네는 여러 나라 외국인이 유달리 많은데, 목욕탕에서 나는 외국인 관광객과 거주인을 구별할 때 때를 미는지 아닌지로 구별한다. 아시아에서 왔던 유럽에서 왔던 미국에서 왔던 관광객들은 꼭 때를 밀더라. 아마도 신기한 경험일게다. 비누 조금 묻혀 때를 밀면 어찌나 피부가 맨들맨들해지는지 안 밀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미는 사람은 없는 마성이 있다. 반면, 거주인들은 살아보니 때밀이의 핵심이 이태리 타올이라는걸 알았는지 때타올을 사서 박박 민다. 외국인 관광객들과 거주인 모두 즐기는 때밀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한류 상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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