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적 독립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 돈은 엄마가 관리하셨다. 참고로 내가 부모로부터 독립한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다. 그 이전까지 내가 번 돈을 내가 관리하지 않았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다.
월급이 들어오면, 특정 계좌에 일정 금액을 이체한다. 계좌에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엄마는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고, 조금이나마 이자를 더 주는 제2금융권인 새마을금고나 신협에 가셔서 1년짜리 예금을 가입하셨다. 종종 성과급이 들어오는 날에는 추가로 예금을 가입하셨다. 이 같은 재테크 방식을 수십 년간을 고집하셨다.
어느 날, 그동안 관리하신 내 계좌를 확인한 적이 있었는데, 예금 계좌만 20개가 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내 계좌만 20개였으니, 아빠와 엄마와 동생 계좌까지 합치면 엄마가 관리하신 계좌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이 있다. 엄마는 매번 은행에 방문하여 이 모든 계좌를 관리하셨다. 엄마는 지금도 스마트폰을 쓰고 계시지 않으며, 홈뱅킹을 할 줄 모르신다. 더운 날이든, 비가 오는 날이든, 직접 은행에 방문하여 예금을 가입하셨고, 예금 만기 날이 다가오면 만기 날에 맞춰 은행에 방문하여 통장 정리 후 예금을 재가입하곤 하셨다.
“이제부터 제가 돈 관리해볼게요.”
“엄마가 하는 거 특별한 거 없어. 그냥 엄마가 하면 돼.”
“특별한 게 없다고 말씀하시니 저도 충분히 할 수 있겠네요.”
“회사 일로도 바쁠 텐데 뭐 하러 돈 관리까지 신경 쓰려고 그래. 엄마가 허튼 곳에 돈 안 쓰고 잘 모으고 있어.”
“그렇다고 해서 평생 제 돈을 관리해주실 거예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언젠가는 제가 맡아서 관리하는 날이 올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미리미리 해보는 게 좋잖아요.”
“아니, 얘가 갑자기 왜 그래?”
부모님께 독립하여 따로 살겠다고 말씀드리며, 앞으로는 돈 관리까지 내가 하겠노라 선포하였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반대하셨지만, 결국에는 허락하셨다. 다만, 그동안 관리하셨던 내 돈은 계속 엄마가 관리하시고, 독립 시점 이후로 내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내가 직접 관리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상관없었다. 그렇게라도 내가 돈 관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 감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황당한 일인데, 당시 나는 스마트폰으로 돈을 이체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아주 소액이지만 엄마 몰래 주식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적금이나 예금을 가입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본 것은 엄마가 직접 은행에 가셔서 예금을 가입하는 모습이 전부였다. 그래서 월급이 들어온 날, 오후 반차를 쓰고 동네 새마을금고로 향했다. 신분증과 도장을 챙기고.
“1년짜리 예금 가입하러 왔는데요.”
“네. 신분증 주시겠어요.”
그 뒤로 태블릿 PC 화면에 몇 번 사인을 하고 나니, 통장 하나를 주시며 예금 가입이 완료되었다고 하셨다.
‘뭐야? 엄청 쉽네.’
역시 월급이나 대출처럼 남에게 내 돈을 받는 건 참으로 어렵고 힘들고 복잡한데, 남들이 내 돈을 가져가거나 내 돈을 남에게 맡기는 건 참으로 쉽고 간결하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이라 두렵고 걱정했던 거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슬슬 재미가 들렸다. 그 뒤로는 은행에 좀 더 자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예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예금을 가입하여 예금 풍차돌리기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다다랐다. 그리하여 월급날이 되면 오후 반차를 쓰거나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은행 업무를 봤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하루는 은행 직원 분께서 이런 말을 하시는 게 아닌가.
“매달 예금을 가입하러 오시나 봐요. 매번 시간 내서 은행에 오시기 힘들지 않으세요? 스마트폰 어플로도 예금 가입이 가능하신데, 어떻게 하는지 알려드릴까요?”
“네? 어플로도 예금 가입이 가능해요?”
“당연하죠.”
이게 무슨 말인가. 그동안 내가 본 모습은 은행에 직접 방문하여 예금을 가입하는 엄마의 모습이 전부였다. 당연히 예금 가입은 은행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다. 심지어 그동안 다양한 재테크 책을 읽었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적금을 가입해야 한다고 배웠지, 스마트폰으로도 예·적금 가입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플로도 예금 가입이 가능하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어플을 설치했다. 직원 분께서는 친절하게 예금 가입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하긴 생각해보면 폰 하나로 주식거래도 하고, 배달음식도 시키고, 물건도 구매하고, 숙소와 비행기도 예매할 수 있는데, 예금 가입만 예외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만 신경 써서 알아봤다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거였는데, 나는 과연 지난 몇 달간 왜 생고생을 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수십 년간 은행을 직접 방문하며 업무를 보신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과연 폰으로도 예금 가입이 가능하다는 걸 모르셨던 걸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분명 나처럼 직원 분에게 안내를 받으셨는데, 본인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크게 귀담아 듣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편하게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내가 엄마를 잘 안다.
엄마가 하던 대로 매달 은행에 방문하다가 이제는 더 이상 은행에 방문하지 않는다. 그 뒤로 예·적금 가입을 비롯한 모든 돈 관리를 스마트폰으로 해오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금전적 독립을 위해 진작 내 스스로 돈 관리를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적인 상식도 몰라 시행착오를 겪을 때도 많지만, 몸소 부딪혀 가며 배우니 확실히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아가 세상 모든 일이 처음만 힘들지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 일이 대부분이라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