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에 도움을 준 단 한권의 책
군 전역 후, 동원훈련을 가게 되었다. 동원훈련은 2박 3일간 진행된다. 전역 후 오랜만에 입는 군복이 살짝 어색하기도 하고, 다시 또 군부대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첫 동원훈련이었기에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다.
부대에 들어서자마자 휴대폰 반납이 이루어졌다. 훈련 시간에는 반납했다가 급하게 필요할 일이 있으면 그때 잠시 사용할 수 있다고 그랬다. 나는 순순히 폰을 반납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대부분 모든 이들이 반납했다.
그러나 이내 곧 내가 순진했다는 걸 깨달았다. 쉬는 시간이 되니 다들 어디선가 주섬주섬 폰을 꺼내드는 게 아닌가. 폰을 미리 2개 가져온 사람도 있고, 아예 제출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2박 3일간 휴대폰 없이 지낼 생각을 하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내 옆에 계신 분은 아까부터 독서에 집중하고 계신 게 아닌가.
‘아~ 책은 가져와서 읽어도 되는 구나.’
그래도 앞으로 2박 3일간 함께 할 사람이니 서로 인사도 나눌 겸 살짝 질문을 던졌다.
“무슨 책 읽으세요?”
“네? 돈이요.”
그러면서 책 표지를 보여주었다. 책 표지에는 정말 큼지막한 글씨로 『돈』이라고 쓰여 있었다. 솔직히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책에 별 관심이 없었고, 경제적 독립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을 때였다.
“유명한 책인가요?”
“10번 넘게 읽었어요. 틈틈이 반복해서 읽는 편이에요. 이거 읽으면 부자 돼요.”
그분의 마지막 말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흔한 재테크 책 띠지에 적힌 홍보성 문구를 직접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그 기분이 남달랐다. 2박3일간의 동원훈련을 마치고, 그 즉시 서점으로 향하여 보도 새퍼의 『돈』을 구매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처럼 부자라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을 부자가 말하면, 그저 속물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겸손함으로 포장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그 말을 우리 같은 평민이 말하면, 그저 속물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자기 위안으로 포장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GDP(국내총생산)는 국가의 경제적 활동과 생산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국가의 부의 증가와 연관되어있다. 행복지수는 국민의 삶과 질에 집중하는 지표로 경제적 안정성, 사회적 연대감, 건강, 교육, 환경 등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행복지수와 GDP간의 상관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그 논리를 근거로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이 아니고, 돈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재정 상태는 그의 자신감 형성에 아주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자고로 돈이란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용납지 않는다. 은행 잔고는 항상 화폐의 최소단위까지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거기엔 과장이나 미화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다. 어떤 상황에도 오그라들지 않을 당당한 자신감을 쌓고 싶으면, 먼저 자신의 돈 문제를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신의 재정 상태가 증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보도 섀퍼의 『돈』 - 35쪽
보도 섀퍼는 한 사람의 재정 상태가 그의 자신감 형성에 아주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높은 자신감은 행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 자신감과 행복을 위해서라도 돈은 반드시 필요하고, 보도 섀퍼의 말처럼 그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재정 상태를 갖춰두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 역시 『자기만의 방』을 통해 여성이 픽션이나 시를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자기만의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쓸 당시 연간 500파운드는 오늘날 4,000만원에 준하는 돈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라면 시 한편 쓸 수 있는 여유는 기대할 수 없다. 당연히 연간 500파운드를 벌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겠지만, 그 정도로 버는 사람이라면 일을 마치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다.
“삼각 김밥 두 개요.”
부모님께 용돈 받아쓰던 학창 시절,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가기 전에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김밥천국에 가서 치즈돈가스라든가 뚝배기불고기 같은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적은 용돈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용돈이 부족할 때면 김밥 두 줄도 주문하기 부담스러워 편의점에 가서 삼각 김밥을 사먹고는 했다. 돈을 버는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일이 빈번했고, 그때마다 내 취향과 행복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보도 섀퍼가 말한 것처럼 재정 상태에 따라 내 자신감이 결정되는 예라고 볼 수 있겠다.
보도 섀퍼의 『돈』을 읽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독립을 위해 내가 어떤 자세로 돈을 벌고, 그 돈을 왜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데 정작 돈이 없어 포기해야 한다면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인생이다. 부족한 재정 상태로 떨어진 자신감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를 결정한다. 이 점을 깨닫게 해준 것만으로도 보도 섀퍼의 『돈』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