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드는 원룸 고르기
부모로부터 처음 독립하여 자취방을 구하러 다녔던 날, 내가 고려했던 부분은 많지 않았다. 일단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았다. 월세와 관리비를 포함해서 월 30만원이 넘는 곳은 전부 배제했다. 갑자기 시작한 자취생활이었기에 많은 돈을 월세로 날리고 싶지 않았다.
내게 좋은 집은 필요 없었다. 내게 집이란 그저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면 그만이었다. 누구나 처음 자취를 시작하면 내가 꿈꿨던 공간이 생겼으니 내가 원하던 가구와 갖고 싶던 제품으로 내 집을 꾸미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난 그럴 마음은 없었다. 그렇기에 풀 옵션에 월세가 낮은 곳만 알아봤다.
그나마 유심히 본 가구는 책상이었다. 책상에서 책도 읽고, 컴퓨터로 글도 쓰고 싶었기 때문에 넓은 책상을 원했다. 그리하여 자취방 5개 후보군 중에 월세가 30만원이 넘지 않고, 넓은 책상이 있는 원룸을 선택했다. 심지어 1층이라는 점도 (그때는)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내 인생 첫 자취방을 계약했다. 내가 원했던 방이 생겼다고 하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좀 살아보니 슬슬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신경쓰였던 부분은 바로 창문이었다. 원룸에 창문은 딱 2개였다. 방에 큰 창문 하나, 화장실에 작은 창문 하나. 내가 살던 원룸의 창문 위치는 좀 특이했다. 창문을 열면 길가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옆집이 보였다. 그러니 창문을 열면 옆집에서 내 방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고, 반대로 내가 옆집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자취방에 사시는 분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창문을 지나쳐야 하는 독특한 구조였다. 내 집은 1층이었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다른 세입자분들이 고개만 들어도 내 집안이 살짝 보이는 구조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환기 시키는 일 아니면 창문을 열어놓기가 조심스러웠다.
더 큰 문제는 채광이었다. 창문을 열면 내 옆집이 보였기에 창문을 열어도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방안에 불을 켜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책상에 앉으면 내 등 뒤에 창문이 있었다. 그러니 책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글을 쓰려고 할 때도 늘 방안의 불과 스탠드조명을 켜야 했다.
그런데 이미 이 집을 선택했고, 2년간 있어야 하니 어쩌겠는가. 그냥 적응하면 살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솔직히... 서론이 좀 길었다.)
친구한테 뜬금없는 연락이 왔다.
“혹시 점 보는 곳 알아?”
“점? 사주?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뭐 그런 거 보는 사람인가.”
“요즘 좀 힘들어서. 내 앞날을 좀 듣고 싶네.”
“아~ 정말? 알았어. 한번 주변에 물어볼게.”
그리하여 지인을 통해 점집을 소개 받았고, 친구와 함께 점집으로 향했다. 솔직히 나는 별생각 없이 갔다. 어차피 마음이 급한 사람은 친구이기에 친구 위주로 상담(?)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점집에서 50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이제 슬슬 마무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옆에 있는 친구는 뭐 궁금한 거 없어?”
“아? 저요? 저는 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요.”
“그래도 같이 왔으니 이야기 한 번 해봐.”
“아.. 그럼.. 음.. 왜 이렇게 팔꿈치가 안 나을까요?”
당시 나는 팔꿈치 통증으로 고생 중이었다. 계속 병원을 다녀도 팔꿈치가 계속 아팠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 병원에서 물어봐야 할 질문을 점집에서 물어보고 말았다.
“집에 햇빛이 안 들어와. 그러면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안 풀려. 그리고 열심히 돈 벌어서 전부 병원에 갖다 바쳐. 볕이 잘 드는 집으로 옮겨야 돼. 안 그러면 계속 아파.”
깜짝 놀랐다. 일단 내가 사는 집에 햇빛이 안 들어온다는 걸 아셨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그리고 팔꿈치가 낫지 않은 원인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집이라는 점도 좀 놀라웠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어찌 보면 점보다는 풍수지리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그게 무엇이든 나한테는 별로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난 사주나 점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별 관심도 없다. 내 인생에서 점을 보러 갔던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마침 집안에 볕이 잘 들어오지 않아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찰나, 점집에서 그런 집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내심 속으로 옳다구나 싶었다.
마침 2년 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계약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새로운 원룸으로 이사를 갔다. 월세 30만원을 넘지 않고, 넓은 책상이 있으며, 무엇보다 볕이 잘 드는 집만 보러 다녔다. 그리고 결국 그런 집을 찾았다. 역시 찾으면 길이 있다.
지금 난 예전 원룸보다 훨씬 큰 창문이 있고, 볕이 잘 드는 3층 집에서 살고 있다. 창문 넘어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한다. 당연히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고, 어쩌면 그저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내 팔꿈치 상태는 많이 나아졌다. 점이든 사주든 풍수지리든 상관없다. 그러나 볕이 잘 드는 집은 무조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