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서울이 아니어도 좋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은 주워진다. 첫 번째 기회는 대학에 진학할 때고, 두 번째 기회는 취직할 때다. 당연히 가장 좋은 것은 첫 번째 기회를 잡는 것이고, 그래도 그나마 괜찮은 것은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이다. 두 번의 기회를 놓친다면, 나처럼 뒤늦게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독립군이 된다.
대학 같은 경우,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었다. 그때는 아직 철이 안 들었기에 독립에 대한 로망은 고사하고 아예 생각조차 없었다. 집을 떠나야한다는 생각보다 등록금이 조금 저렴한 국립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내 수능점수를 확인하고,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대학 중 내가 갈 수 있는 국립대에 맞춰 갔다.
다른 지역에서 온 동기들은 원룸 생활을 할 때, 나는 엄마가 해주시는 따스한 밥 먹으며 등하교했다. 종종 동기들 원룸에 놀러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가 참 딱해보였다.
‘세상에 이런 집도 있구나. 참 좁네.’
좁고 불편한 집에 살면서, 매달 월세를 내기 위해 열심히 알바를 뛰는 동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참 행운아라는 생각까지 했다. 참으로 철없는 생각이었다.
취직을 할 때도 비슷했다. 군 전역 후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공공기관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는데, 마침 그 회사가 내가 인턴했던 곳에서 무척 가까웠다. 워낙 가깝다보니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그 회사가 왠지 모르게 익숙함, 편안함, 친근함이 느껴졌다.
‘가까운 게 최고지.’
결과적으로 난 합격을 했고, 그 덕분에 인턴 생활을 마치고 바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회사를 지금도 다니고 있다. 회사를 선택함에 있어 회사의 전망이나 근무 환경도 물론 고려했지만, 인턴했던 곳과 가까웠다는 점도 큰 몫을 했다. 결국, 난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독립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발로 뻥뻥 차버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당시에는 그때가 독립의 기회인지 몰랐다. 뒤늦게 돌이켜보니 생각해보니 대학에 진학할 때와 취직을 할 때가 가장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자연스러운 독립은 본인도 그렇고 부모도 그렇고 그 상황을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현실을 인정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식은 자식 나름대로의 삶을 설계해나갈 수 있고,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의 인생을 꾸며나갈 수 있다.
두 번의 기회를 놓쳐버리면,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독립을 쟁취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식과 부모 사이에 마찰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자연스럽게 독립을 이루어낸 가족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일들 하나하나가 전부 문제가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자연스러운 독립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이유는 제발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in 서울을 말하지만, 굳이 in 서울이 아니어도 좋다. 대학진학과 취직을 통해 자연스럽게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립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독립은 ‘공간적으로 독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