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거
“자취하면 뭐 하려고?”
“이제 아무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지?”
“그러니까. 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을 거 아냐?”
“글쎄다. 뭐 혼자 살면 내 마음대로 야식 시켜먹을 수 있겠네.”
“에라이. 고작 그거냐.”
늦은 나이에 독립을 준비하던 나는 20대부터 자취를 시작한 친구를 만나 자취생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대화에서 늘 빠지지 않았던 주제는 ‘자취를 시작하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였다.
홀로 곰곰이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엉뚱하게도 프로레슬링 게임이었다. 대학생 시절, 동기들 따라 PC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나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포트리스나 같은 게임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집에 들어와 부모님 앞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마치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렇기에 프로레슬링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나로서는 굉장히 발랄한 생각이었고 내 나름의 반항이었다. 부모님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문득 게임이 떠오른 것이다. 독립 후 홀로 방안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그토록 행복할 수가 없었다.
독립 후 자취를 시작하면서 프로레슬링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장만했다. 덩달아 그 누구보다 편한 자세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1인용 접이식 무중력 의자도 마련했다. 아쉽게도 술을 못하는 나는 시원한 탄산음료를 옆에 두고, 무중력 의자에 거의 반 눕듯 앉아 밤늦게까지 게임을 즐기곤 했다. 이제 정말 내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6~8개월 정도 지나니 슬슬 흥미를 잃어갔다. 이제는 누가 시켜서 게임을 하라고 해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과연 게임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게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까이꺼 다시 찾아보지 뭐.”
내가 사랑했던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 속상하다. 그러나 내가 겪은 상황은 그런 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하고 싶었던 일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게 된 것뿐이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새로 찾아보기로.
하루는 자취방 바로 옆에 있는 뜨개질 공방에 눈길이 갔다. 쉬는 날, 잔잔한 음악을 틀어넣고 커피 한 잔 마시며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아 뜨개질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멋져보였다. (참고로 당시 내가 사는 자취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옆 건물에 가려져 햇볕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월세가 쌌지.)
무턱대로 들어가 1시간 정도 목도리 뜨는 법을 배우고, 실과 대바늘을 구입했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만 강사님께서 어느 정도 잡아주시고, 나머지는 반복 작업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1인용 접이식 무중력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했다. 당연히 잔잔한 음악은 흐르고 있었고, 내 옆에는 따뜻한 커피가 있었다. 다만, 창문 너머 내비치는 따사로운 햇살만 없을 뿐.
“이거 너무 진도가 안 나가는데.”
이 역시 문제가 발생했다. 진도가 안 나가도 너무 안 나갔다. 아무리 뜨개질을 반복해도 좀처럼 목도리가 길어지지 않았다. 내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목도리는 고사하고 발목 정도 감을 정도였다. 이 역시 중도 포기를 선언하고, 뜨다만 목도리는 집안 한 구석에 고이 모셔 놨다.
독립하여 홀로 자취를 시작하면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긴다. 누구의 눈치와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고, 언제든지 멈출 수 있고,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혼자 지내면 하루 종일 널브러져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나를 행복하게 해줄 그 무언가가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 계속 도전한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비록 이 모든 것이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과 늘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도전과 포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