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헬스장에 들어서자마자 눈동자를 좌우로 빠르게 굴리며 주변을 살핀다. 총 몇 분이 운동을 하고 계시며, 각자 어떤 운동을 하고 계신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저 분은 스쿼트, 저 분은 데드리프트, 저 분은 렛풀다운, 저 분은 덤벨 숄더프레스. 오호라~ 아무도 가슴 운동을 안 하고 계시네요. 오예~’
엊그제 하체 운동을 했고, 어제는 등 운동을 했으니, 마침 오늘은 가슴 운동을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가슴 운동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3분할 혹은 4분할 운동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가슴 운동과 겹칠 확률은 극히 적다. 그럼 나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평소 나만의 루틴으로 덤벨 플라이를 하고, 벤치 프레스를 하고, 덤벨 프레스를 하고, 인클라인 벤치프레스를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날만 있는 건 아니다.
마침 오늘은 하체 운동을 하는 날이었다. 하체 운동을 하는 날이면 정말 큰 맘 먹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하체 운동은 정말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 상태로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어라? 저 분은 레그 프레스, 저 분은 핵 스쿼트, 저 분은 레그 컬, 저 분은 레그 익스텐션. 어쩜 이렇게 다들 하체 운동 머신을 하나씩 꿰차고 계신거지? 나도 하체 운동해야 하는데.’
헬스장에 머신의 개수는 제한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여러 사람이 하체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면 머신을 차지하기 위한 눈치게임이 벌어진다. 이럴 때 눈치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유연하게 작전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하체 운동을 하더라도 머신 운동이 아닌 프리웨이트 운동 위주로 하는 것이다. 주로 바벨을 활용한 스쿼트나 덤벨을 활용한 불가리안 스플릿 런지나 워킹 런지 등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건 결국 아는 만큼 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오늘 하루 헬스장에서 운동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 내가 하는 운동이 어떤 운동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이 머신은 어떤 신체 부위를 단련하기 위한 머신인지, 등 운동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바벨로 하는 벤치프레스와 덤벨로 하는 벤치프레스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가 무슨 헬스트레이너도 아니고 보디빌더도 아닌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지만,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 이것이 바로 헬스장 눈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이다.
정치를 예로 들어보겠다. 정치를 알면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그 다음 행보를 예측할 수 있다. 이 시점에 저 사람이 왜 등장하는지, 갑자기 페이스북에 왜 저런 글을 올리는지, 왜 집회에 나가서 저런 말을 하는지. 정치를 알면 그들의 의도가 보인다. 물론, 내가 파악한 의도가 틀릴 수 있다. 종편을 보면 하나의 사실을 놓고도 저렇게도 다른 해석을 늘어놓고 다투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허나 비록 예측했던 방향과 현실이 다르게 흘러갈지라도 그 또한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점점 정치가 재밌어진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이 시점에서 왜 투수 교체를 하는지, 왜 갑자기 내야수들이 앞으로 전진하는지, 왜 허무하게 볼넷을 허용하는지, 야구를 아는 만큼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A팀 감독의 의도를 뻔히 알고 있을 B팀 감독은 과연 이 시점에서 어떤 지시를 내릴 것인가 그리고 과연 선수는 그 지시대로 이행할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이 야구를 즐기는 방법이다. 바로 이때 야구를 아는 만큼 보이게 되고, 야구가 더 재밌어진다.
헬스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어떤 운동을 하는지를 보고, 그 다음 어떤 운동을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럼 그에 맞춰 내가 오늘 운동할 계획을 세우거나 수정할 수 있다. 남들이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결국 나만의 운동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헬스장에서의 눈치게임은 단순한 자리싸움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