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
“아빠, 보고 있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미끄럼틀 위에 앉은 아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란 티셔츠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났다. 귀여운 내 딸아이는 웃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고, 머리카락 몇 가닥이 볼에 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나는 손을 들어 보였다.
아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앞으로 밀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놀이터 전체에 퍼졌다.
나는 벤치에 등을 기대앉았다. 나무 벤치는 오래되어 가운데가 약간 들어가 있었다. 손으로 벤치 표면을 문지르자 거친 나뭇결이 느껴졌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오후 5시 17분.
별다른 알림은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이번엔 그네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작은 운동화가 놀이터 바닥에 닿을 때마다 통통통 귀여운 소리가 났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놀이터 입구 쪽에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놀이터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시선이 계속 신경 쓰였다.
나는 다시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그네에 앉아 발을 구르며 혼자 타고 있었다.
“아빠!”
아이가 나를 불렀다.
“응!”
나는 대답했다.
“더 세게 밀어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의 등 뒤에 서서 그네를 잡았다.
작은 등이 손바닥에 닿았다.
나는 그네를 밀었다.
아이의 몸이 앞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더!”
나는 조금 더 세게 밀었다.
아이는 웃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들었다.
몇 번 더 밀어주다가, 다시 벤치로 돌아왔다.
검은 모자를 쓴 남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그를 한 번 더 쳐다봤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
휴대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스팸 전화 같았다.
받지 않았다.
다시 진동했다.
‘어라 이상하네. 스팸이 두 번 전화올 일은 없고’
받으려는 찰나에 진동이 멈췄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네가 흔들리고 있었다.
비어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네 쪽으로 걸어갔다.
그네는 아직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그네를 잡았다.
멈췄다.
“은혜야.”
내 목소리가 어색하게 들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미끄럼틀.
정글짐.
터널.
없었다.
심장이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김은혜!”
이번엔 크게 불렀다.
저 멀리 몇몇 부모들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혹시… 여기서 놀던 아이 못 보셨습니까?”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못 봤는데요.”
“노란 티셔츠 입고…”
여자는 잠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혼자 계셨던 거 아니에요?”
나는 웃었다.
“아니요. 제 아이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여자의 표정이 이상했다.
경계하는 눈빛.
나는 돌아섰다.
놀이터 입구를 바라봤다.
검은 모자를 쓴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
경찰이 도착했을 때, 나는 벤치 앞에 서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젊은 경찰관이 다가왔다.
“신고하신 분 맞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잃어버렸습니다.”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경찰관은 수첩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입니까?”
“한… 10분 전입니다.”
“어디서요?”
나는 그네를 가리켰다.
“저기서요.”
경찰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징을 말씀해 주세요.”
“노란 티셔츠, 파란 반바지, 흰 운동화.”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경찰관은 받아 적었다.
“같이 계셨습니까?”
“네.”
나는 확신했다.
“계속 같이 있었습니다.”
경찰관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무전을 했다.
나는 놀이터를 바라봤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았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해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경찰관이 다시 돌아왔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선생님.”
나는 그를 바라봤다.
“CCTV를 확인했습니다.”
나는 안도했다.
이제 찾을 수 있다.
분명 찍혀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갔습니까?”
경찰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
그가 말했다.
“놀이터에 들어오신 건… 혼자였습니다.”
나는 웃었다.
“아닙니다.”
“혼자 벤치에 앉아 계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네 쪽에도, 혼자 걸어가셨습니다.”
숨이 막혔다.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말했다.
“분명히 있었습니다.”
경찰관은 나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그는 태블릿을 내게 보여줬다.
놀이터 입구.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나였다.
나는 혼자였다.
처음부터.
계속.
혼자였다.
“그리고…”
경찰관이 말했다.
“선생님은 6개월 전에 실종 신고를 하셨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름이었다.
차 안.
잠든 아이.
잠깐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잠깐이면 된다고.
나는 얼굴을 감쌌다.
숨이 떨렸다.
나는 놀이터를 바라봤다.
빈 그네.
빈 미끄럼틀.
빈 터널.
나는 천천히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옆자리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거기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가자.”
내 목소리는 작았다.
“집에 가자.”
대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