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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별고래 Jun 28. 2024

누구를 위한 교육

경쟁과 스트레스가 적은 스웨덴식 교육 (1)

스웨덴은 경쟁이 적은 나라다.
그래서 학교 교육도 굉장히 느슨하다.


스웨덴의 교육 시스템 : 기본적으로 무상교육이며, 출신 성분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동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교육 방침을 따르고 있다. 한국과 학제가 조금 다르지만, 유치원부터 초등, 중등교육까지 의무 교육이며, 고등교육 이상은 선택할 수 있고, 다양한 종류의 직업학교, 기술학교 등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다양한 편이다. 




스웨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멕시코인 친구 커플(남자친구는 스웨덴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우리에게

"한국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나라라고 들었어. 정말이야?"

라고 물었고, 우리는 간단하게나마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 겪었던 입시 제도와 그 대학 입시를 위해 한국 학생들이 어떠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와, 정말 대단하다. 정말 그렇게 공부한단 말이야? 그게 가능해?"

친구 커플은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놀라며 쉽게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게 놀았던 순간이 고등학생 때야. 친구들과 파티하고, 운동하고, 기타도 배우고. 정말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아마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걸." 


그리고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는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어?"

"아니, 죽어도 싫지."

"나도."

"그때 기억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나도 그래."


이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참 씁쓸한 생각이 들었고, 또 참 많이 그들이 부러웠다. 


스웨덴 사람들은 왜 우리와 다르게 학교를,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며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기억할까. 




스웨덴은 무언가를 배우기를, 또 그것을 잘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스웨덴 학생들은 학교에서 혹은 방과 후에 악기, 운동, 새로운 언어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한다. 

특히 여름이 되면 축구장에서 신나게 축구를 하는 남녀 학생을 흔히 볼 수 있다. 

표정을 보면 굉장히 진지하고 프로급이지만 실력을 보면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저렇게 해도 되나? 선생님은 잘못된 것을 고쳐주지 않고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관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교육의 목적은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저 '경험해 보는 것'. 


어느 날은 지인께서 자신의 아들 학교 졸업 축제 공연이라며 동영상을 보여주셨는데, 아이들은 저마다 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 입고 무대 위에서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연주하고 춤도 추고 있었다. 

복장은 정말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었지만, 노래 음정은 하나도 맞지 않았으며, 춤이라고는 동작이 하나도 맞지 않는 막춤이었고, 악기 소리는 무슨 노래인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정말 대단하지! 아이들은 이걸 준비하면서 정말 즐거운 경험을 했을 거야."

이 말을 듣고 다시 영상을 보니, 공연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그것을 바라보는 교사와 학부모들도 모두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유치원 교사로 일 할 때, 아이들과 졸업식을 준비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우리도 아이들에게 잘하기를 강요하는 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기대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조금은 강압적으로,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날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보며 행복해하고 뿌듯해했던 어른들의 모습들. 


그때 우리 아이들은 분명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처럼 이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힘든 순간이었다고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열심히 또 즐겁게 하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항상 더 중요했었다. 




스웨덴은 학생들은 정말 많이 논다. 


스웨덴은 방학이 참 길고, 다양한 종류의 방학이 있다. 

겨울 방학은 별로 길지 않지만, 여름 방학은 거의 두 달이 넘고, 학기 중간중간에도 짧은 방학들이 많다. 아마 이 모든 방학을 합하면 세 달은 족히 넘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그 방학 때는 주로 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가족이랑 여행을 간다. 


우리의 방학이 되면 사교육 시스템으로 내몰리는 문화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

물론 상위 몇 퍼센트의 똑똑한 학생들은 이곳에서도 프라이빗 수업도 듣고, 미국이나 영국, 독일 같은 곳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들에게 방학은 정말 그냥 노는 날이다. 


이렇게 '노는 문화'는 꼭 방학뿐이 아니다.

이곳 학생들은 두 세시정도면 하교를 하는데, 보통 학교가 끝나면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았을 때 

"일단 학교 숙제를 하고, 친구를 만나서 같이 놀거나 운동을 해요. 수영장을 가거나 필드하키를 하러 가거나 축구를 하기도 해요."라고 대답한다. 


나의 한국어 클래스에도 스웨덴 중 고등학생들이 몇몇 있는데, 처음에는 '배워서 아무 데도 쓸모없는 한국어를 도대체 공부하기도 바쁜 중 고등학생들이 왜 배울까?'라고 생각했었다. 


이들에게 왜 한국어를 배우냐는 질문에 대부분 그냥

"재미있으니까요."

"나는 한국어가 좋아요.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자막 없이 보고 싶어요."

"나중에 한국을 여행할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이들은 이처럼 배워서 꼭 필요한 것, 예를 들어 우리처럼 대학 입시에 필요하다거나 나중에 취업할 때 쓸모 있는 것, 학교 내신 점수를 받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을 위주로 배우는 것이 아닌, 정말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고, 하면서 즐거운 것들을 배우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는 시간이 많고 마음이 여유로우니 할 수 있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스웨덴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참 많다. 그 기회를 잡는 것도 쉽다. 


내가 스웨덴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교를 가고, 또 바로 대학원을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지금 대학교에서 기계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 스웨덴 친구는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 후 음악 학교로 진학해 2년간 성가 음악을 배우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던 중 다시 기계 공학 쪽으로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대학교에 진학했고, 아직도 음악을 취미로 하고 있지만 공학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을 하고 싶어 세계여행을 몇 개월 다니다가 돈이 떨어져 스웨덴에 다시 들어왔는데, 아이들이 좋아서 지금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제든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 대학교를 다시 갈 생각이라고 했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한 친구는 대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도 일을 했지만, 회사 생활이 자신과 맞지 않은 것을 깨닫고 그만둔 후,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행을 하면서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다가 지속가능한 환경 공학 쪽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했고, 지금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웨덴 사람들은 참 우리와 다르게 생각이 자유롭고, 하나의 선택에 얽매이지 않으며, 설사 그 선택이 실패이거나 실수였다고 해도 새로운 것을 다시 선택해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수능이라는 단 하나의 순간으로 앞으로 남은 인생이 결정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에 선택한 그 전공으로 평생을 먹고살아야 하는 엄청난 압박감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내가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스웨덴 대학은 너에게 기회를 정말 많이 줄 거야. 재시험의 기회도 많으니 한 번에 시험을 패스하지 못한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어."였다. 

이제는 학업을 다시 시작하기엔 나이가 조금 많아 걱정할 때에도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오히려 그동안의 경험이 너의 공부에 더 도움을 줄 거야." 라며 나에게 부족한 것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두어 바라봐주었다. 


스웨덴은 이렇게 이민자에다가 나이도 많은 나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나는 스웨덴의 교육이 완벽하다고, 최고라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스웨덴도 지금 많은 교육 문제에 직면해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자유롭고 경쟁이 없는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의 교육 수준이 점점 하향 평준화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교사라는 직업을 기피하면서 교사의 질 그리고 교육의 질 또한 점점 낮아지고 있어 이것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많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많은 한국인 부모들에게 

"스웨덴의 교육의 질이 나빠지고 있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모두가 하나같이 망설이지 않고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과도한 경쟁, 대학 입시, 어린아이들의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 문제, 학교 폭력, 사교육 등 너무나 많은 한국의 교육 문제를 이미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도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이제는 조금 '라곰(Lagom)적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며,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 

돈이나 명성 등 사회적 성공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 개인적의 삶의 편안함에서 오는 행복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가치관. 이것이 스웨덴 사람들이 교육을 바라보는 라곰적 관점이 아닐까. 




오늘도 카페에 앉아있으면 바깥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저 아이들은 친구들과 항상 저렇게 웃고 즐겁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아닌, 밤늦도록 잔디밭에서 공 하나로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삶.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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