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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별고래 Jun 07. 2024

지금은 휴가 중입니다

work-life balance (1) : 일만큼 중요한 휴식 

스웨덴 사람들은 여름엔 아무도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햇빛을 즐기러 휴가를 떠난다.


스웨덴의 휴가 : 스웨덴 노동법으로 지정되어 있는 스웨덴 노동자들을 위한 휴가는 1년에 5주다. 하지만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은 아무도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다. 각자의 휴가 기간이 달라 함께 일하기 힘든 점, 날씨가 매우 쾌청한 점, 그래서 모두가 비타민 D를 충전해야 하는 시기인 점 때문에 이 3개월가량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대신 우중충하고 우울한 겨울 동안은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한다.




한국인은 정말 성실하다. 책임감도 강하다. 그리고 일처리도 빠르다. 

이것은 아마 한국인 스스로 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을 겪어 본 외국인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평가일 것이다. 

장담하건대, 한국에서 아무리 일머리가 없고 느리다고 평가받는 사회 초년생도 외국에 나와 일을 하면 '빨리빨리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한국인만큼 타자가 빠르고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인종을 본 적이 없다. 

일분일초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각종 단축키를 사용하고, 어떤 일을 받자마자 최대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머리를 쓰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드물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 굉장히 머리가 비상하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항상 피곤하다.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스몰 토크를 하는 시간, 잠깐 밖을 보며 한숨 돌리는 시간,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며, 그 모든 시간들을 아껴 일에 집중한다. 

회사의 입장에서 이렇게 고마운 직원들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처럼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뒤 우리한테 돌아오는 '휴가'라는 보상은 얼마나 될까?

한국에서 지금 소위 잘 나가는 상위 몇 개의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1년에 며칠이나 맘 편히 쉬고 있을까. 


내 경우엔 단 10일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유치원 교사였다. 

한국의 유치원 교사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야근은 당연하고 어쩔 주말 근무까지 한 푼의 추가 수당 없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요즘은 아닐지도). 그러고 주어진 여름방학, 그리고 겨울방학 각각 단 5일씩의 짧은 휴가. 

이것 또한 수많은 부모들의 '방학이 너무 길다', '5일 동안 애 맡길 곳이 없다'라는 원성을 들으며, 결국엔 교사들은 돌아가면서 휴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맞벌이가 대부분이고, 그 부모들의 회사도 휴가가 없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 이해도 되는 부분이지만, 우리가 모두 한 달씩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그들도 아이들과 맘 편하게 놀아 줄 수 있는 분위기라면 어땠을까. 




"이번 휴가 계획은 뭐야?"


"이번 휴가엔 조카들이랑 우리의 별장 주변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카약도 탈 계획이야."

"그곳에 우리만의 비밀 장소가 있는데 거기 버섯이 아주 많아. 버섯을 따서 버터에 구워 먹으면 아주 맛있어."

"다른 큰 도시들은 사람이 많아서 가기 싫어. 스웨덴에선 보통 가족들이랑 바비큐를 구워 먹으면서 날씨 좋은 스웨덴의 여름을 즐기지."


내가 만난 스웨덴 사람들은 대게 summer house(여름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개개인이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아니고, 가족들이 돈을 모아 숲이나 바다 근처 집 하나를 함께 관리하고, 여름휴가기간이 되면 바비큐도 구워 먹고, 주변 숲에서 버섯과 블루베리도 따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용도인 경우가 많은데, 여름이 되면 여름 별장을 관리하고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집집마다 별장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긴 휴가동안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닌, 휴가 내내 가족들이랑 그곳에서 버섯이나 블루베리를 따면서 고기나 먹는다니. 한국에 있을 때 잠시만 틈만 나도 여행을 가고 싶어 비행기 티켓을 클릭했던 나에겐 너무나 큰 문화 충격이었다. 


스웨덴에 오기 전에는 북유럽 사람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소득도 높고, 휴가도 기니까 다른 나라로 여행을 많이 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만난 그 누구도 나보다 유럽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유럽까지 오려면 12시간 이상은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 먼 한국에서 어떻게 이렇게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여행했는지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가 느낀 스웨덴 사람들의 휴가는 물론 5주 이상의 긴 시간 동안의 휴가 기간, 여유로운 근무 환경 등으로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휴가처럼 '열심히 놀아야 하는', 하나라도 더 보고, 남들 하는 건 다 해 보고, 열심히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아닌, 정말 휴식 그 자체 혹은 다음 일에 대한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서머 하우스가 많은 시골 동네를 다니다 보면 그냥 벤치나 해먹에 누워 햇빛을 쬐면서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병원이나 공공기관등 내가 원하는 적절한 서비스를 신속하게 받지 못한다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모두가 휴가인 기간이니까 이해해야지."라든가

"기다리면 휴가를 다녀온 다음 처리되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맘 편히 아예 그냥 이 기간엔 무슨 일을 처리받길 기대하지를 않는다. 




한 가지는 바로 '병가'에 대한 개념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자주 아픈데, 예를 들어 두통이 있다거나 감기 기운이 있다거나 심지어 우울한 기분 같은 멘털적인 이슈를 이유로 '아파서 일을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하지만 이처럼 몸이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면, 일찍 퇴근을 한다거나 집에서 쉬면서 일하는 재택근무가 비교적 자유롭다. 


아침에 메일이나 전화 한 통으로 

"오늘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오늘은 work from home(재택근무) 할게." 또는 

"두통이 좀 있어서 집에 일찍 가봐야 할 것 같아." 라며 오후 근무를 통째로 빼는 경우가 꽤 있다. 


아직도 한국인 마인드를 못 버린 나와 남편은 '머리 좀 아픈데 대순가, 타이레놀 하나 먹으면 되지' '이러고도 회사가 잘 돌아간다니'하며 가끔 이런 분위기가 신기하지만, 이들에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의 경우 한국에서 일할 때, 물론 배탈이 났어도, 몸살이 났어도 출근을 했었기 때문에 아파서 쉬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설사 너무 아파서 출근을 못 할 경우에 내 소중한 5일의 휴가 중 하루를 반납해야만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정말 정말 아파도 기어코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다.

몇몇 원장들은 '평소 몸 관리 못하는 것도 능력'이라며 오히려 핀잔을 주기까지 해서 서러웠던 적도 많았다. 어디 그게 원장뿐일까. 말은 직접적으로 안 했지만 동료 교사들조차 '아픈 건 안 됐지만 네가 없으면 그 일 다 내가 해야 되는데'라는 느낌을 팍팍 내면서 아픈 사람을 심지어 임산부까지 죄인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이들은 아파서 출근을 하지 못하는 동료가 있다면, 그 사람 대신 내가 조금 더 그 일을 맡아하는 점에 대해서도 굉장히 관대한 편이다. 물론 허구한 날 아파서 직장을 안 나온다거나 누가 봐도 꾀병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전 세계 공통적으로 모두가 싫어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함께 일을 하는 거니까 도와가야 한다"라든가

"나도 언젠가 이런 일이 닥칠 수 있으니 서로 이해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꺼이 돕는다. 


오히려 매니저와의 미팅에서 건강에 대한, 특히 우울증 혹은 알코올 중독과 같은 멘털 이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며, 매니저는 자신이 맡은 사람들의 건강을 관리해야 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의무가 있다. 


아픈 것을 쉬쉬하면서 회사에 피해가 갈까 봐 혹은 내가 능력 없는 사람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한국의 회사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나의 경우가 조금 더 극단적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1년 중 달랑 10일의 휴가와 5주간의 여름휴가. 

몸이 너무 아파도 쉴 수 조차 없는 환경과 몸이 아프면 당연히 쉴 수 있는 여유.

내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당연히 도와줄 거라는 믿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법으로 보장되고, 또한 사회 구성원 간에 신뢰와 합의가 이루어진 분위기. 


내가 느끼는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로 당연히 받아야 할 '휴가'라는 권리가 한국과 스웨덴에서는 너무 많이 달랐다. 


물론 스웨덴도 하루아침에 이런 분위기가 떡 하니 생긴 건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노동법이 생겼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그들도 끊임없이 투쟁했으니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기본 바탕에는 라곰(Lagom)이 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휴식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언제나 이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balance)이 필요하다는 믿음. 이 기본적인 마인드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되어 노동자들에게 이토록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 왔던 것 같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콜롬비아, 멕시코 같은 남미 나라들의 뒤를 이어, OECD 국가들 중 다섯 번째로 많은 근무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개발 도상국도 아니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을 해야 하는 시기도 지났다.


이제는 조금 더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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