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life balance(2) : 분명한 on and off
스웨덴에서는 퇴근을 하면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사적 영역도 일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on and off : 아침에 출근을 하면 일하는 모드 on. 그리고 퇴근과 동시에 그 전원을 off.
마치 전등의 스위치를 켜고 끄듯, 내 생활에서 일하는 모드의 스위치를 잘 켜고 끄는 것.
직장과 나의 사적 영역의 경계를 확실히 하는 것.
나는 한국에서 8년 동안 유치원 교사로 일했다.
순수한 작은 존재들이 나의 수고로움과 노력으로 무럭무럭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보람됐지만, 그것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의 강한 노동 강도와 말도 안 되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교사의 희생'은 나의 삶을 점점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야간 수당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밤 9시, 10시까지 야근을 하는 것은 예사였으며, 유치원 평가 등 행사가 있는 달에는 주말 근무도 당연했다. 어쩔 땐 버스가 끊겨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택시로 퇴근을 하였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에 교통비 따위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일을 했던 곳에서는 교사의 역량을 높인다는 이유로 교사와 원장 혹은 교사 간 연구 모임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는데, 내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 그와 관련한 책을 읽어서 함께 토론을 한다거나, 더 발전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각자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 발표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취재는 정말 정말 좋지만, 우리는 이런 것을 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아침에는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해서는 자는 시간도 아까운 사람들이 언제 고상하게 책을 읽으면 독서 토론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원장님은
"자기 발전이 없는 사람한테 어떤 프로페셔널한 자세가 나오겠냐"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집에 가서 핸드폰 하지 말고 책 보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 정신력의 문제다" 등등 온갖 자존심을 긁는 말들로 나무라며, 마치 퇴근을 한 후에도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교사는 '자질이 없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평가해 버렸다.
이런 압박과 노동 강도 속에 나는 점차 지쳐갔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스웨덴에서 스웨덴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같은 '교사'라는 직업이지만 대상도 목적도 다른 일이기에 나에겐 완전히 새로운 일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머나먼 땅에서 한국 문화를 이토록 사랑해 준다는 고마움과 더불어 내 나라의 문화를 북유럽에까지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가끔 내 학생들은 개인 메일이나 메신저로 공부하다 궁금한 점 등을 질문하곤 한다.
나는 한국에서 배운 교사의 엄청난 서비스 정신과 사명감으로 지체 없이 바로바로 답장을 하려 노력했다. 그들이 한국어에 대한 흥미가 지속되길, 학습에 대한 열의가 끊이질 않길 바라면서.
하지만 어느 날, 친해진 학생 중 가끔 사적으로도 만나 커피도 마시고 식사도 하는 친구가 조심스레 나에게 말을 꺼냈다.
"나는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책임감이 강하고 열심히 일하는지 알고 있어. 물론 너도 그렇지. 너는 우리에게 정말 최고의 선생님이야. 하지만 그건 수업 시간으로도 충분해. 너의 사적인 시간을 쓰면서까지 그렇게 바로 메시지를 보낼 필요는 없어.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의 사적인 시간을 존중해, 그게 교사라도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 너는 이미 잘하고 있어."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내가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토록 열심히 일하면서 그 누구도 나에게 해 주지 않은 따뜻한 위로 그리고 조언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만족하지 말라고, 더 발전해야 한다고, 아직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채찍질당하며 살던 지난 한국에서의 내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정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쿵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를 옥죄고 있던 무거운 책임감과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완벽'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를 사귈 때도 내가 그 친구에게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절대 말을 걸지 않았고, 아주 작은 시험이라도 어이없게 저지른 나의 실수에 대해 나 자신에게 가혹할 정도로 용남이 되지 않아 괴로워했다. 몇 날 며칠을 그것을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나를 자책했다.
이런 성격은 사회에 나가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나는 수업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수정했고, 심지어 학부모 참여 수업과 같은 공개 수업이 있거나 결과물에 대한 발표가 있을 땐 말할 대사 하나하나까지 적어 외워가면서 나의 기준의 '완벽'이 될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나는 이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우리 한국어 학당에서는 가끔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그날은 한 학기가 끝난 기념으로 하는 종업식이었다.
우리는 이벤트 장소로 동네의 한 작은 교회를 빌렸고,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이었다.
그런데 교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번호를 눌러 열리는 전자식 키였는데 번호가 맞지 않은 건지 무슨 이유인지 10시가 넘어도 열리지가 않았다. 학생들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앞마당이 가득 찰 정도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모여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학생들에게 가서
"아... 이게 왜 이런지 모르겠네. 문이 지금 안 열려서... 정말 미안해. 여기서 이 음식을 먹으면서 조그만 기다려줘." 라며 미안함과 민망함을 표현했다.
하지만 내 우려와는 다르게 모두 하나같이
"하하하 뭐 살다 보면 별 일 다 있지. 이것도 하나의 에피소드 아니겠어?"
"괜찮아. 날씨도 따뜻하고 햇빛도 있어서 오히려 야외 파티가 좋아."
"안되는데 어떡해. 그냥 즐겨야지." 라며 웃었다.
그 누구도, 단 한 명도 불평을 하거나 인상을 찌푸리거나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면서 욕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안 되는 일에 애쓰지 말라고, 이 시간도 그냥 즐기라고 밝은 미소로 나를 토닥여주고 있었다.
직장에 있을 때는 열심히 일 해야 하지만 퇴근을 하면 일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내 사적인 생활, 즉 취미 생활이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또한 즐길 줄 아는 것. 그래서 그 이상의 필요 없는 에너지를 쓰지 않고, 그만큼의 여유가 있는 삶. 나는 이게 이들의 삶의 철학 라곰(Lagom)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면 좋지 못한 결과를 얻는 것처럼,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룰루랄라 빈둥대는 것도 좋지 않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현재 한국인들의 삶은 너무 지나치게 열심히 살고, 그 결과에 집착하며,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며, 그것에 대해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것 같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서 누군가 푸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금 여유를 갖고 쉬어도 된다. 조금 그런다고 해서 당장 망하지 않는다.
이제 열심히 사는 나에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만큼만 해도 된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면 조금 더 사회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래,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나는 완벽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걸 위해 그토록 노력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실수를 하며 우리는 서로 그걸 이해하고 감싸줘야 한다.
나는 이곳에서 그것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