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스트레스가 적은 스웨덴 교육 (2)
이 이야기는 내가 한참 스웨덴어를 배우러 다니고 있을 때 이야기다.
스웨덴에는 SFI라는 언어 교육 기관이 있다.
나는 스웨덴에 오자마자 SFI 교육을 신청하였고, 2주 정도 기다린 끝에 수업을 배정받아 그곳에서 스웨덴어를 학습할 수 있었다.
SFI : Svanska För Invandrare, 스웨덴에 사는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 교육. 현재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고, 정부로부터 발급된 등록 번호(personal number)를 가지고 있는 이민자라면 누구나 신청만 하면 무료로 어학 기관에서 스웨덴어를 배울 수 있다. 직업군에 따라, 특히 정부기관에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스웨덴어 학습 자격증이 요구되기도 한다.
제2 외국어인 영어도 아니고, 제3의 언어인 스웨덴어라니.
처음부터 쉽지는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수업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쉽지 않았다.
첫날, 첫 시간부터 오직 스웨덴어만을 사용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과, 오전 8시, 겨울이면 아직 해도 뜨지 않을 이른 시간부터 연달아 5시간 진행되는 긴 수업 시간, 그리고 한 반에 30명이 넘는 꽉꽉 들어 찬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
스웨덴어 알파벳 기본 발음조차 잘 알지 못했던 왕기초 수준 나에겐 이 모든 것이 도전 그 자체였다.
'아... 내가 왜 스웨덴에 왔지. 지금이라도 한국에 돌아갈까. 나이 먹고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심지어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이 스웨덴어 설명조차 알아듣지 못해, 나는 항상 옆에 앉은 친구에게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나 좀 알려주래?"라고 재차 물어봐야 했다.
다행히 독일, 콜롬비아, 인도, 멕시코, 태국 등에서 온 착한 친구들과 친해지며 어찌어찌 수업을 따라가게 되었을 무렵.
"다음 주에 레벨 테스트가 있을 거야. 이 레벨 테스트를 보고 통과하면 다음 레벨로 올라갈 수 있어."
테스트라니.
나는 이제 겨우 겨우 눈치로 알아듣는 수준인데, 테스트를 볼 수 있을까.
너무 걱정되고 막막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레벨 테스트를 보았고, 예상대로 점수는 형편없었다.
우리는 이 테스트 결과를 가지고 선생님과 1대 1 상담을 통해 다음 레벨로 갈 수 있을지, 공부에 어려움은 없는지, 무엇이 가장 힘든 점인지 등에 대해 상담을 했다.
작은 상담실에 처음으로 선생님과 단 둘이 마주 앉았다.
"스웨덴어 공부는 어떤 것 같아? 힘든 점은 없어?"
"나에겐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과정이 힘든 것 같아. 솔직히 네가 수업 시간에 하는 설명의 반도 못 알아듣고 있어. 내 생각엔 나는 다음 레벨로 가지 못할 것 같아. 내가 받은 점수에 나는 너무 실망했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자신도 이란에서 온 이민자 출신이며, 네가 겪고 있는 모든 과정을 똑같이 겪어 얼마나 힘들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시험 점수에 너무 실망하지 마. 처음에 못하는 건 당연하거지. 나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알고 있어. 하지만 여기는 스웨덴이야. 한국에서 가졌던 생각들은 버려. 스웨덴에서는 아무도 너에게 좋은 결과를 성취하라고 강요하지 않아.
그냥 천천히 해. 서두를 필요 없어.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의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해 이렇게 따뜻하게 위로해 주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내가 받은 월급 값은 해야지, 혹은 본인들이 나에게 건 기대에 내가 마땅히 부합해 주어야지 하며 대 놓고 압박을 주거나 은근히 비꼬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들으라는 듯이 대 놓고 다른 사람들과 내 욕을 하던 성숙하지 못한 인간들 천지였는데.
이 사람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들의 이 포용과 배려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내가 겪은 이 일 이후에도 스웨덴 학생들이 학업에 임하는 자세, 학교를 다니는 태도 등을 알아가면서 이 사람들은 공부와 학업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훨씬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사회 분위기가 경쟁을 싫어하고, 그래서 어떤 결과를 가지고 내 성과와 다른 사람의 성과를 비교하지 않는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는 듯하다.
또한 이 모든 태도는 라곰(Lagom)의 가치와 일맥상통하는데, 한쪽으로 극단적이게 치우치지 않고 중간에서 양쪽의 가치를 모두 포용하려는 자세. 이것이 때론 모 아니면 도처럼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답답하고 우유부단해 보일 수도 있으나, 스웨덴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포용의 태도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닐까.
비교와 경쟁을 강요하지 않고, 나만의 공부를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환경은 나 같은 사람에겐 어떠한 압박 없이 내 것에 집중하여 오히려 더 큰 효율을 만들어주게 하였다.
물론 이것은 사람의 기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타이트하고, 나에게 동기부여를 해 줄 경쟁할 사람이 있어야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경쟁적인 환경보다는 이런 편안한 환경이 더 맞는 듯하다. 아직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