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휴식 시간 (1) : 스웨덴의 피카 문화에 대하여
스웨덴 사람들과 친해지리면 피카를 하세요.
피카(FIKA) : 친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문화 중 하나. 주로 커피와 함께 시나몬 번(Kanelbulle)이라는 스웨덴식 빵을 디저트로 함께 먹는다. 스웨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루 두 번 이상 친한 사람들과 혹은 혼자만의 피카 시간을 꼭 갖는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에겐 피카란 커피 마시는 행위 그 이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스웨덴 사람에게 '나랑 피카할래?'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이제 나와 친해지고 싶고,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됐다는 말이다.
내가 처음 피카를 접한 건 우리가 스웨덴에 온 지 1주일이 지났을 쯤이었다.
우리는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스웨덴에 온 케이스라 운이 좋게도 남편의 회사에서 우리의 해외 이주 과정을 모두 도와주고 비용도 지불해 주어 비교적 편리하게 해외 이주할 수 있었다.
해외 이주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비자와 우리가 앞으로 살 집의 렌트 프로세스를 모두 도와주는 분이 있었다. 그분은 한국에서 우리와 연락할 때부터 한국의 문화를 궁금해했고, 특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우리는 이주 과정을 도와준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 당시에 꽤 인기가 있었던 오징어 게임 드라마 속에 나온 '달고나 세트'를 선물로 준비해 전달하였다. 그분은 너무나 좋아하며 우리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너희 부부를 우리 집에 꼭 초대하고 싶어. 바쁘지 않으면 오후 세시에 우리 집에 올래?"
처음으로 진짜 스웨덴 사람의 집에 가 본다는 설렘으로 들뜨고 너무 기뻤지만, 오후 세시라니.
뭐가 이렇게 애매한 시간이지?
한국이라면 보통 점심 또는 저녁 시간 같은 '밥 먹는 시간'에 손님을 초대하여 같이 밥을 먹자고 했을 텐데, 오후 세시면 밥시간도 아닌데 만나서 뭐를 해야 할까.
그냥 이야기를 하자는 걸까. 그럼 점심을 미리 먹고 가야 하나.
아니면 스페인이나 남미처럼 늦은 점심을 먹자는 의미일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그 집에 도착하였을 때, 그 분과 그분의 여자친구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집과 귀여운 애완 고양이를 소개해주었고, 잘 차려진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하며 말했다.
"여기 편하게 앉아. 우리가 빵과 쿠키를 좀 준비했어. 같이 피카하자."
우리는 빵과 쿠키, 케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한국 문화와 스웨덴 문화의 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우리가 가져간 소주도 함께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집에 오는 길에 나와 남편은
"간식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저녁을 못 먹겠는데? 단걸 너무 많이 먹어서 입맛이 없어."
"우리가 먹은 건 점심일까 아니면 저녁일까?"
"스웨덴 사람들은 이렇게 빵을 먹고 또 저녁을 먹는 건가?"
"모르겠어."
아직 스웨덴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우리에겐 피카는 조금 신기하고 생경한 경험이었다.
나중에 '피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후로 우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 그것은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보여준 엄청난 호의였다는 것을.
스웨덴 사람들은 하루 두 번 이상, 보통 오전 그리고 오후 점심 먹은 후 (어떤 사람들은 세 번 이상) 피카를 꼭 한다. 그래서 오후 두 세시쯤 바깥을 돌아다니면 카페 곳곳마다 피카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건 직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스웨덴 사람들이 다수인 회사는 매일매일 피카 시간을 가진다고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많은 인터내셔널 회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피카 시간을 갖는다.
남편 회사의 경우 매주 금요일 오후 두 시에 피카 시간을 갖는데, 이때 열 명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매주 돌아가면서 빵과 쿠키 케이크 등 커피와 함께 먹을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 나누어 먹는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던 건 보통 금요일 이 피카 시간 이후에는 일을 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편도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피카를 한 후 오후 세시쯤이면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것이 당연해졌다.
게다가 또 신기한 건 휴직 상태라 현재 회사에 나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이 피카 시간에 맞춰 회사에 온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육아 휴직하고 쉬고 있는 그 사람 있지? 오늘 그 사람이 아기를 데리고 피카하러 왔어."
"응? 왜?"
"그냥... 아기 데리고 산책하고 있다가 피카 시간에 맞춰서 이야기하려고 왔대."
이게 무슨 소리지?
너무나 한국 사람인 나의 기준에서는 회사가 그냥 심심해서 잠깐 들르는 카페도 아니고, 휴직 중인 사람이 피카하려고 잠깐 들러 커피 마시고 놀다가 그냥 갔다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문화가 이 사람들에겐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스웨덴 문화에서 피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일은 안 하더라도 팀원들과의 유대를 위해 피카에는 참석하는 자세라니.
일단 출근을 하면 노닥거릴 시간 없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책임감 강한 한국인들에게 하루 한 두 번의 피카 타임은 참 이상할 수 있다.
한 번 피카를 할 때마다 족히 1시간은 걸릴 테니, 하루 여덟 시간의 근무 시간 중 적어도 두 시간은 쓸데없이 히히덕거리며 놀며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언제 일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맞다, 한국에 비하면 스웨덴은 빠릿빠릿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으며,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식의 마인드도 있다.
조금은 답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 조금의 쉬는 시간과 여유를 가지면서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화를 조금은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어쩔 땐 서두르다가 저지르는 실수도 줄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뭐가 맞다고, 뭐가 더 좋다는 정답은 없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그래서인지 스웨덴 사람들은 늘 웃으면서 일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잠깐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마음도,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피카 문화도, 그 밑바탕에는 라곰(Lagom)적 가치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쪽으로 저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지금의 상태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마음. 그래서 마음을 편안하게 두고, 소소하게 따뜻한 커피 한잔과 달콤한 빵으로도 행복하고 만족한다고 느끼는 삶의 태도.
내가 스웨덴에 살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면 많은 사람들이 항상 화가 나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화가 나 있는 게 아니라 사는 게 너무 힘들거나 지쳐서 혹은 웃을 일이 없어서 무표정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서양인에 비해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것도 포함).
밝게 웃으며 손님을 응대하는 종업원이 없고, 어쩌다 한국의 신문물(?)을 잘 사용하지 못해 버벅대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천천히 행동을 하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의 짜증 섞인 눈빛, 숙덕거리는 말들을 느낀다.
언젠가부터 한국은 재빠르고 똘똘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가 된 것 같다.
한국에 살 땐 몰랐다.
왜냐면, 분명 나도 그랬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한국 사람들이 못됐거나 이해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그걸 참고 기다려 줄 마음의 여유가 좀 없을 뿐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조금 쉬어가라고 이해해 주는 여유를 갖는다면 행복한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