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별고래 May 31. 2024

언제나 네 의견을 존중해

스웨덴의 개인주의(2) : 개개인의 소수 의견도 존중 받는 사회

스웨덴 사람들은 개인에게 단체의 의견에 맞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소수의 의견도 똑같이 중요하다.


스웨덴의 토론 문화 : 스웨덴 사람들은 토론을 참 좋아한다. 어떤 결정을 할 때,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묻고, 그 의견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야 한다 생각한다. 
반면 대한민국은 '눈치껏 알아서 다수의 의견에 잘 따라가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이다.




나는 자랄 때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눈치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왜 눈치가 없다고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친한 친구가 나에게

"너는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편이잖아. 뭔가 룰에 따라가는 것도 싫어하고." 

라고 말했을 때, 

'아!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눈치 없다고 말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눈치를 챙겨보려 노력'했지만,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건지, 성격이 모난 건지 그게 잘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행동이 있을 때마다 툭툭 말을 꺼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나는 내가 단체 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모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보니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남편의 직업은 엔지니어다. 그래서 일의 특성상 해외 출장이 잦다. 일 년에 적어도 3번은 출장을 가곤 한다. 

한국에 있을 때도 늘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생활이 익숙해져 있었다.  

일 년에 두세 달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은 당연했다. 


"나 이번에 스페인으로 출장 가"

"응, 잘 다녀와."

"혼자 괜찮겠어?"

"어쩔 수 없지. 회사일인데. 나 때문에 못 간다고 말할 순 없잖아."

"와이프가 혼자 힘들어서 못 갈 것 같으면 말하래."


이게 무슨 말이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 때문에 출장을 가는 것과 내가 혼자 있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혼자 스웨덴에 남아 있을 나의 사정과 우리 가족의 사정을 걱정해 주는 회사라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이라면 이런 사적인 일은 핑계가 많거나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태도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달랐다.

개개인의 사정과 아주 사소한 이유도 존중받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남편의 해외 출장 일정이 잡힐 때마다 남편의 팀 동료들은 우리의 사정을 물어보고 걱정해 주었고, 심지어 너무 고맙게도 설날 등 한국의 큰 명절이 끼어 있는 날짜에 출장이 잡히게 되면, 혼자 남아있을 내가 외로울까 봐 기꺼이 '같이 가도 된다'도 말해주기도 했다. 


또한 이곳의 직장 문화는 팀장과의 개별 면담도 필수였다.

1주일 혹은 2주일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팀장과의 미팅에서는 주로 '개인의 발전'이 될 만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회사의 미래뿐 아니라 개인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회사에서 그것을 위해 도와줄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그들은 '회사의 발전만큼 개인의 발전도 중요하며, 그것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단지 회사 안에 속한 하나의 부속품이 아니라 존중받고 계속해서 자기 발전을 해 나가야 할 주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내가 한창 언어를 배우러 다닐 때, 그 수업이 무엇이든지 이곳 학교들은 주로 토론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짧은 문학 작품을 읽고 와서 배경이나 주인공의 삶 또는 내가 느낀 점 이 글을 통해 배운 점을 토론하거나, 교사가 정해 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각자의 다른 입장을 나누는 식이었다. 


이런 형식의 수업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처음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로 돌아가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언제 내가 끼어들어서 말해야 할지 모르겠을 뿐 아니라 언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수업 방식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모두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 어떤 사람은 혼자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개중 몇몇은 주제와 다소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것 등 가끔은 '내가 왜 이걸 다 듣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교사가 설명하는 정답을 듣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공부에만 익숙한 나는 이 수업 방식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떠한 의견이라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존중해 주는 분위기에서 나는 수업 시간의 편안함을 느꼈고, 그 편안함 속에서 나의 생각과 의견 또한 확장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의견이라도 귀담아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적절한 피드백이나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려 했다. 

점수를 채점하는 방식에도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정답을 찾는 것뿐 아니라 내 의견을 논리 있게 전달하여 남을 이해시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이러한 과정에서 배움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고 정답을 찾아내는 과정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 나의 의견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도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만난 스웨덴 사람들은 항상 남에 말을 귀담아 들었다. 내가 어떤 말을 시작하면 내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알아들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나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아, 너 말 알겠는데,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래"라든지

"내 말 좀 들어봐. 나도 그거 해봤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게 더 나"라든지

"우리 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너만 그렇게 생각해?"라든지

"빨리 끝나게 그냥 의견 통일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스웨덴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그룹 전체의 목표를 위해 개개인의 작은 의견은 조금 희생되고 된다는 것이 아닌, 개개인 고유의 의견, 가치관(설사 그것이 그룹 전체 목표와 조금 맞지 않더라도)도 그것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태도 또한 스웨덴의 '라곰(Lagom)'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개인과 사회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려 노력하는 것. 그래서 개인의 작은 의견 하나도 전체가 추구하는 가치관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스웨덴 사람들이 생각하는 라곰이 아닐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중 어느 하나가 꼭 맞고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양의 집단주의 문화는 중요한 사항을 한 번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서 편리하고, 나는 이 점이 대한민국을 이토록 빠르게 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반면, 개인의 의견을 일일이 수용하려 노력하는 스웨덴 문화는 무엇 하나 결정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처리가 느리고 답답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질, 즉 '행복한 삶'의 측면에서 우리의 집단주의 태도는 어쩌면 개인의 행복보다는 전체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위해 우리에게 그저 그것에 맞춰지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않을까. 

우리는 이미 많은 발전을 이뤘음에도 아직도 빠른 발전과 효율적인 시스템 운영을 이유로 다양성과 존중의 영역은 뒤로 미뤄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적어도 '눈치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일은 없다. 

모두가 내 작은 의견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은 높아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