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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Aug 21. 2020

네가 관계에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응. 나 예민하지.

 옛 친구 중 내게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이유를 말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중요하다던 그 아이는 남의 말을 잘 듣고 필요한 말만 하는 친구였다. 친구의 말은 단지 한 문장이었지만 내게는 남에게 경청하겠다는 마음과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더 많이 다가왔다. 친구와 대화할 때면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고 관계가 견고해진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없는 말 있는 말 꺼내던 내가 그중에서도 말실수를 덜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친구의 오래전 말 때문이었다. 




 대화의 결이 비슷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먼저 상경을 하고 뒤따라 가게 되었다. 그 친구가 없는 동안 속이 얼마나 곪았는지 새삼 너무 의지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는 꽤나 개인주의적 성향에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생각하고 있는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슬퍼했다. 딱히 말동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말들을 포장 없이 말해도 날 것 그대로 들어주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다른 친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친구는 말했다.

 '너 너무 예민해. 아무도 친구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


 상경한 친구와 오랜만에 한 통화에서 결국 눈물이 나고 말았다.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했어. 

 내가 남들이랑 많이 다른 걸까.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잘못된 걸까.'


 내게 예민하다는 친구의 말이 그녀의 친구인 나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처럼 들렸다. 친구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내게 초라함을 선사했다. 다들 친구는 본인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나와의 관계는 왜 이어가려고 애쓰는 걸까. 친구의 모순인지, 이것 또한 나의 예민함인지 혼란스러웠다. 당황함이 전화를 통해 전해졌고 친구는 침묵을 남겼다. 끝나자마자 들었던 부정의 말들과는 달라서인지, 침묵이 그리웠던 건지 주책맞게 눈물이 나왔다. 애들이 내가 예민 하대, 내가 너무 예민 하대, 내가 틀린 거래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친구는 내 두서없는 이야기를 한참이나 듣더니 말했다.


 '관계에도 굴곡이 있으니 너는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면 돼'


 뼛속까지 이과에 공대생인 나는 sin x의 그래프를 떠올리며 이해했고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네가 힘들다면 관계에 힘을 빼는 건 어떻겠냐고, 힘을 빼고 상대를 대해보라고. 너무 생각하고 마음을 줘버리면 가끔 혼자 지치는데,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거 같아서 자존심 상하고 싫더라고.

y=sin(x)의 그래프

 내가 고민이라며 했던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면서 말했다. 관계에도 굴곡이 있는데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더라. 일희일비하게 되면 내가 지쳐서 관계를 놓게 되니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조금 느슨해도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누가 그런 말을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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