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을 두려워할 줄 아는 이는 상대를 절벽으로 내몰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나는 지긋지긋한 부부싸움을 보며 자랐다. 밤이 되면 집안은 엄마의 날카로운 고성과 아버지의 쌍욕이 복잡한 주파수로 가득 찼다. 어른들이 짖어대는 소음과 문지방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형광등 불빛을 가리기 위해 두꺼운 이불을 덮어쓴 채 목화솜 요에 엎드려 발등을 부비적거리며 한참을 앓다 겨우 잠들었다.
어린 날에는 잠들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자려 누우면 눈 주위가 뻐근하게 아파오고 설상가상 눈을 감으면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귓가에서는 위잉 위잉 하는 기계음이 맴돌았다. 이불 밖으로 발이 나오면 누가 덥석 잡고 지옥으로 데려갈 것 같은 착각에 한껏 웅크려 잠을 청해야 했다.
부모가 싸우지 않던 밤에도 나는 이유 모를 불안에 잠을 설치는 아이였다.
엄마와 아버지의 싸움에 대한 첫 기억은 네다섯 살 무렵의 내가 아버지의 다리를 붙들며 말렸던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연한 살구색 실크로 된 잠옷바지의 촉감을 기억한다. 그만하라고 다리를 밀어붙이는 내게 아버지는 "싸우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던 것도. 어린애는 어른들이 싸우는 걸 정말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아버지의 허벅지 높이만 했던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그들 싸움의 직관러가 된 것이다. 유년시절에는 두려움과 공포로 느껴졌던 부모의 다툼은 일상이 되었고, 방문 넘어 들려오는 대화를 분석하며 누가 더 구린사람인지 판단해보곤 했다. 거의 모든 싸움의 원인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생활비를 주지 않아서, 공과금을 밀려서, 사업은 힘들다면서 다른 사람들 밥은 펑펑 사주고 다녀서, 술을 먹어서, 상갓집에서 밤새 화투판을 벌여서, 가망 없는 사업을 자꾸만 벌여서 등등등.. 하지만 패배는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다.
매일 싸우는 그들을 보면서 느낀 건 엄마는 싸움의 기술이 없다는 것이었다. 늘 감정적으로 격앙돼서 몰아붙이는 고압적인 태도에 그가 주장하는 정당한 메시지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엄마의 목소리와 표정, 태도를 보며 분노에 사로잡혔고, 그랬기에 두 사람은 전혀 엉뚱한 주제로 싸움에 불이 붙었다. 원래 안건과는 별개로 서로 양쪽 집을 헐뜯고, 조롱하며 존재의 근원을 비난하고, 그야말로 퍼부을 수 있는 모든 악담을 서로에게 뱉어냈다. 어떤 날에는 과일을 집어 던지거나, 엄마가 칼을 들고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분에 못 이긴 엄마가 기절해버리거나 집을 나가버리는 형태로 상황이 종료됐다. 치열한 전투 끝에 남는 건 어린 자식들에게 드리우는 그늘뿐이었다. 두 사람 다 변하는 건 없었으니까. 그런 전쟁은 매번 같은 패턴으로 반복됐다.
그때 목소리가 큰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누가 어떤 잘못을 했건간에 감정이 먼저 달아오르는 사람이 백전백패한다는 걸, 이상한 사람으로 몰린 채 파국을 맞이한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일찍 깨달은 부부싸움의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결혼 생활의 교훈으로 삼고 실천 중이다.
장난 섞인 티격태격을 제외하고서 진짜로 살벌한(?) 대화가 필요할 때에는 감정을 최대한 접어둔 채, 아이가 잠든 시간이 될 때까지 기를 모은다.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다퉈야 풀릴 상황이라면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고, 느려진다. 남편의 잘못이 명백할수록 더 그렇다. 문장은 간결하게. 팩트로만 이야기한다. 대학 시절 디베이트 강사로 활동했던 경력은 부부싸움에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도저히 피해나갈 구멍이 없도록 적확한 답정너 질문으로 그가 반박할 여지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잘못은 당신이 했는데, 내가 흥분하고 소리쳐서 바가지 긁는 여편네가 되고 싶지 않아. 당신은 같은 잘못을 벌써 몇 번째 반복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거야? 나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어?
나는 당신이 좋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싶어. 이런 문제 아니면 우리가 싸울 일이 없는데 왜 같은 사유로 우리가 얼굴을 붉혀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여러 번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는데 기어이 당신 때문에 내가 악다구니 쓰는 여자가 되어야만 하는 거니? 우리가 앞으로 잘 지내길 원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 건지, 이미 불신이 쌓인 나한테서 어떻게 다시 신뢰를 만들 건지 얘기해 줘. 그리고 지켜줘. 당신한테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아.
칼로 물 베는 게 부부싸움이라지만, 나는 칼로 서로의 영혼을 도려내는 광경을 또렷이 보아왔다. 갈라설 사이가 아니라면, 조금은 모자라고 때때로 실수할지언정 모든 싸움의 바탕에는 여전히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파국을 두려워할 줄 아는 이는 결코 상대를 절벽으로 내몰지 않는다.
이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부모에게서 배운 삶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