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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하게 Mar 25. 2024

아버지와 닮지 않은 남자를 찾았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정에서 접했던 남자들은 대체로 시시하거나 한심했고, 비겁했다. 


아버지는 내실은 없이 허영심과 자존심만 센 사람이었다. 덩치는 컸지만 소갈딱지는 밴댕이의 그것만도 못해서 화가 나면 말을 더듬으며 상스러운 욕을 내뱉곤 잠들어버리는 것으로 상황을 회피했다. 그리고 끝내 그는 불륜남으로 인생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작은아버지는 예술가라는 허울에 취해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사상과 철학으로 작품을 세상과 소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내 엄마가 숨어든 방문을 두드리며 쌍욕을 퍼붓던 몰상식한 인간으로 기억된다. 

큰아버지는 유년시절 내게 웃음이 많고,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나 후에 그가 끔찍한 가정폭력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모부는 목사였지만 뱀보다 간사한 혓바닥으로 집안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종하며 박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할머니의 뒤편에 서서 당신 부인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묵인하는 비겁한 가장이었다. 

엄마의 유일한 남동생이었던 삼촌은 분노조절 장애환자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에서 나아가 피해를 주는 인물이었다.


고개만 돌리면 눈에 띄는 엉망진창의 남성상들을 보면서 자라온 나는 또래의 남자들도 시시했다. 빠끔빠끔 담배를 입에 문채 겉멋에 가득 찬 그들은 대체로 매사에 불성실했으며 장난스러웠고, 진지한 구석 없이 술 마시며 여자를 꼬시는 일에만 몰두하는 종족처럼 보였다. 지금은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남자들의 그런 성향이 귀엽게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지금보다도 더 애늙은이 같았던 나는 그런 남자들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렇게 삐딱한 시선을 건네는 나를 남자들이 좋아할리는 만무했을 터. 남들은 중, 고등학교 때 첫 연애를 시작한다던데 나는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도 연애는커녕 썸도 제대로 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다. 


10년 만에 버스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어느 날 내게 불쑥 전화해 "여기 네 남자친구 있어. 와 봐."라고 해서 간 곳에는 정말이지 멋이 하나도 없는 남자가 서 있었다. 뱅뱅이 안경에 드래곤볼 베지터를 연상시키는 위로 솟은 까까머리에 끔찍한(?) 기장의 7부 바지. 처음 그의 인상세상에 태어나 여자라고는 번도 만나본 없는 같은 숙맥 자체였다.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못한 친구 품에 안겨 있었으니까. 


북적북적한 카페에 앉아서 입을 꾹 다문채 손끝만 만지작거리는 사람이었다.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라 확신했던 남자였다. 어색한 침묵이 싫어 질문을 쏟아내는 내게 겨우겨우 단답형의 대답만 내놓던 그는 그날 이후 내게 아침, 점심, 저녁 연락을 해왔다. '두껍아 두껍아 뭐 하니' 묻는 아이들처럼 그는 내게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엔 무얼 먹었는지, 저녁을 굶지는 않았는지 물어왔다. 그뿐이었다. 만나서 영화 보자는 흔한 말도 없이 그는 몇 날 며칠을 그놈에 밥 안부만 물어오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혈기왕성한 또래 남자들의 가벼움이 한심해 보였다곤 하지만 그는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남자였다. 진중하다 못해 답답한 종류의 사람이었달까. 하지만 요령도 없이 기계적인 문자로 자신의 진심을 우직하게 전하는 그 사람에게 점점 스며들기 시작했다. 


매사에 뜬구름 잡는 것 마냥 요란한 빈 수레 같았던 아버지와 달리 그는 꽉 찬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허우대만 컸던 아버지와 달리 작지만 옹골찬 사람이었다. 입으로 청사진만 떠들던 아버지와는 달리 말없이 미래를 묵묵히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감정기복이 심했던 아버지와 달리 언제나 같은 결의 감정선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촌스럽게만 봤던 그에게서 시간이 흐를수록 반질반질한 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잘 빚은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은은한 광택 같은 것 말이다. 스물셋, 젊음이 빛나던 시기 옆엔 그가 있었다. 처음으로 마음껏 어린아이처럼 맘껏 철없이 행동해 봤다. 주제에 도도하게 굴어도 기꺼이 졸졸졸 쫓아오는 그를 보며 충만한 사랑을 경험했다. 부모에게서도 받은 없는 사랑에 취했다. 동시에 불안했다. 첫사랑의 설렘에 흠뻑 젖어있다가도 불안은 불쑥 찾아왔다. 


3년을 구애한 끝에 결혼했다는 아버지와 엄마도 결국엔 파국에 이르렀듯 그 달콤한 연애도 결국엔 흙탕물처럼 변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은 나를 괴롭혔다. 그럴수록 그는 더 나를 굳건하게 안아주었다.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들은 그토록 미워하면서도 은연중에 부모와 닮은 배우자를 찾는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혹시 나도 그런 미련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이 사람의 다른 구석이 있지 않을까.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다. 


스물셋에 만난 그는 스물여덟, 내게 청혼했다. 

장교 전역 후 취업한 그의 직장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기도 했고, 나는 내가 살던 고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한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평생 곳을 떠난다는 아쉬움도 막막함도 내겐 없었다. 지긋지긋한 집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리는 것이 나의 로망이었다. 18평짜리 작은 사택으로도 충분했다. 

그와의 결혼은 마치 지난한 인생에게 안녕을 선언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Yes이다. 

결혼생활 가운데 어려운 고난도 분명 있었지만 함께였기에 명랑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남편에게서 내 아버지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냐고 묻는다면, 노력하는 중이라고 답할 수밖에. 

아직도 나는 '백년해로'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변한다고 믿는 쪽이다. 변하는 시점을 늦추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의심 없이 누리는 행복은 언젠가 뒤통수를 후려칠 것만 같다. 여전히 그런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저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노력할 뿐이다. 이 행복의 유효기간을 늘리기 위해. 

딸에게 좋은 엄마 아빠로 기억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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