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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Apr 19. 2024

출산은 위대하지만 스펙이 될 순 없나요?

최근 스레드 계정에 짧은 글을 하나 적었다. '출산도 스펙'이라는 키워드로 쓴 글이었다. 출산이 무슨 '스펙'이냐고? 신박한 시선에 공감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고,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도 있었다. 전자 쪽의 반응이 더 많았지만 여러 시선의 갑론을박을 거치는 과정에서 애초에 글을 쓸 때보다 내 생각이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발언의 의도를 설명하는 과정이 나 스스로도 꽤나 흥미로웠기 때문에 다시금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스펙(spec)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하여 이르는 말'. 하지만 외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단어라고 한다. 이 단어의 뜻만 놓고 보자면 직장을 구하는데 필요하기는커녕 걸림돌이 되는 출산이 스펙이라니. 어불성설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구태여 덧붙이자면 반어적 표현이자 비유였다. 대한민국 기혼여성으로서 출산이 취업에 이롭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걸 모를 리 없지 않은가. 다만 스펙이 작용하는 배경을 '인생'으로 두고 본다면 출산은 꽤나 가치 있고 매력적인 '스펙'으로 작용할 수 있을 거란 의미였다. 


모든 이의 스펙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난임의 경우를 제외한 출산 또한 선택의 영역으로 기정사실화 된 지 오래다. 이런 시국에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 인생의 가장 건강하고 젊은 시기에 한 아이를 품고, 낳아 키우는 일이 인생의 '스펙'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사회인이기에 출산과 육아, 양육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자부심으로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선택한 단어였으나, 일부는 '스펙'이라는 단어의 적확성 여부를 빌미로 반론을 제기했다. 


출산이 '스펙'이라면 비출산을 선택한 사람은 '스펙이 없는' 사람이 되는 아니냐는 식이었다. 세상에는 스펙의 종류가 다양하고 모든 사람이 같은 종류의 것을 득해야 할 이유는 없으므로, 그건 글쓴이의 이분법적인 생각에서 기인한 오독이었다. 또한 '스펙'은 이력서에 있는 경력을 의미하는데 출산은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적절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었는데, 말에서 글의 논리를 공고히 있었다. 


그렇다. 출산은 이력서 한 줄만큼의 영향력도 갖지 못하는 무형의 노동이다. 출산은 너무나 신성해서 자본주의에서 쓰이는 '스펙'이라는 단어에 비유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불편함을 표현한다. 물론 소수였지만 이 대목에서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땅에서의 출산이 '스펙'처럼 세속적인 단어와 결부시키면 안 될 고결한 행위라면 과연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많은 여성이 이력서 한 줄로도 담을 수 없는 단절의 시간을 기꺼이 감수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언젠가 사회로 나갈 날을 고대하면서. 사회에서 결코 인정받지 못하는 그 시간을 스스로 '스펙'처럼 실용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불편할 일인지 묻고 싶었다. 


누가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태건 말건 여전히 출산과 육아는 내 인생에 가장 굵직한 스펙이자 키워드이다. 모두가 제 자신 하나 건사하기에도 힘들다고 울부짖는 이 시대에 기어이 날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은 숭고하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되는 것 또한 그러하다. 아이를 키우는 환경에는 경제적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육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 올곧은 철학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과정을 즐기는 상태까지도 내겐 환경이다. 이것 또한 스펙으로 비유한다면 높은 점수로 책정될지도 모르겠다. 


'출산은 위대하고, 아이는 소중하다'는 식의 말은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기사탕마냥 아무런 맛도 효용도 알 수 없이 막연하기만 할 뿐이다. 

에라 모르겠다. '출산은 스펙'이다. 나 홀로 정의 내려보기로 한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대단한 자부심이고, 자랑이다. 태어나 이토록 훌륭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스펙 아니면 무엇일까. 

더 이상 출산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라는 그 무책임한 다정함에 속지 않을 거다. 경력단절이라는 단어에 지레 겁먹고 먼저 주저앉지도 않을거다. 당당히 발언하고, 힘차게 나댈테다. 나의 가치 정도는 내가 정의하고 외칠 수 있다. '출산은 스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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