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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Apr 26. 2024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딸에게

7세와의 생활은 유치하다. 딸과의 신경전이 벌어질 때면 내 감정의 키도 아이와 꼭 같아진다. 다정한 엄마로서의 자아는 너무도 쉽게 흩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매서운 눈빛을 장전한 채 치열한 말싸움을 벌인다. 이때 복식호흡은 필수다. 가장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기선제압을 해야만 한다. 아이의 울음에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저놈의 버르장머리, 내가 오늘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라고 마음먹어버리는 순간 촛불 같던 다툼이 활화산처럼 번져버리고 만다. 


시작은 저녁시간에서부터였다. 저녁을 다 먹으면 식혜를 한 잔 주겠노라고 약속한 채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먹는 둥 마는 둥 제 몫을 아빠에게 다 넘겨주고는 식혜를 당당히 요구했다. 당연히 내 대답은 "No"


"다 먹었잖아. 왜 약속해 놓고선 안 줘"

"절반도 제대로 안 먹고 아빠한테 넘기는 거 다 봤어."

"엄마가 준다고 했잖아!"

"저녁 다 먹으면 준다고 했지!"

"아 먹고 싶단 말이야~"

"밥도 다 안 먹어놓고선, 안돼."


씩씩대던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응석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울 테면 울어라 내버려 두고 그릇 정리에만 몰두했다. 평소와는 달리 오늘 울음은 유독 길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밥도 제대로 먹지 않은 아이에게 단 것을 줄 순 없다는 게 내 철칙이었으므로 그냥 뒀다. 


내가 영 대꾸도 반응도 없자 아이는 거실로 가서 다 들리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진짜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나도 이제부터는 엄마 안 사랑해. 진짜 미워. 싫어. 엄마는 이제 나 안지도 못하게 할 거야. 사랑한다면서 식혜도 안 주고. 완전 0점이야. 말 걸지도 마.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나 이제 엄마 진짜 안 사랑해!"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표현은 다 끌어다가 나를 향한 원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는 귀여운 모습이건만 감정이 올라와있을 땐 그저 바짝 약이 오른다. 내가 34살인지 7살인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말이다. 


"너 정말이지~ 그럼 너도 엄마한테 말 걸지 마. 엄마도 대답 안 할래."라는 유치한 말을 기어이 내뱉고야 말았다. 서로 진심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어린애에게 똑같은 펀치를 날리고 마는 스스로가 치졸하다고 느끼지만, 이럴 땐 꼭 머리와 마음과 입이 따로 논다. 


설거지를 마치고 한숨 돌린 채 소파에 앉으니 씩씩대다 혼자 꼼지락 거리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다시 귀여워 보인다. 분명 등지고 있으면서도 나를 의식하면서 '흥, 치' 이런 류의 소리를 내는 것도 우스워 죽겠다. 

그래도 가만히 지켜봤다. 이제 어떻게 나오려는지 반응이 궁금했다. 소파에 앉아서도 한참 동안 반응이 없으니 아이는 슬금슬금 기어 올라와 내 무릎 위에 제 몸을 널브러뜨렸다. 주둥이는 삐죽 솟은 채로 말이다. 


"뭐 하는 건데 지금." 내가 묻자 아이는 "그냥 내 마음이지" 한다. 

"엄마 싫다며. 안 사랑한다며. 말 걸지도 말라며." 나는 또 치사하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엄마는 진짜 내 마음을 몰라. 안 되겠어." 하더니 아이는 뽀로로 컴퓨터로 툭탁툭탁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엄마는 네 마음을 모른다. 난엄마를 실어한다. 점수0 엄마도 내가 실은가보다.]

쓰곤, 내게 툭 보여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를 슬깃 흘겨보고는 나도 답장을 썼다. 


[아니다. 나는 00을 엄청 사랑한다. 00은 심술쟁이다. 그래도 난 사랑한다. 00은 나 사랑 안 한다고 말해도 사랑해]


우리는 서로 흘겨보면서도 어느새 입꼬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7세와의 전쟁은 언제나 진지하지만 끝은 싱겁다. 피식 먼저 웃는 사람이 사과하는 거다. 늘 유치한 사랑고백으로 끝나고 말지만 실은 참 다행이라는 걸 알고 있다. 

칼로 물 베는 모녀다툼이라는 게 때로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즐거운지, 우스운지.


영원히 엄마로부터 떠나온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꼬맹이의 도발에 약 오르지 않는 큰 어른이 되는 건 너무 어려운 미션인 것 같고

부디 우리는 이 정도로만 싸우자. 그리고 화해하자. 속으로 다짐해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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