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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Apr 25. 2024

일희일비의 날들

프리랜서의 삶 

프리랜서로 산다는 건 자유와 불안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것과 같다. 내 업 특성상 1년 주기 중 연말이 가장 바쁘고, 그 이외의 기간 동안에는 드문드문 의뢰가 들어온다. 바빴던 연말 프로젝트들을 모두 끝내고 해방감도 잠시, 봄바람이 불어오니 불안감이 스며오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는 매월 고정 작업도 계약이 끝난 터라 더 싱숭생숭했다. 프리랜서는 직장인에 비해 단기간 수익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안정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기에 이렇듯 늘 조마조마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간헐적인 수입은 정신 바짝 차리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숫자에 무디고, 감각추구에 민감한 나는 그 중심을 잡기가 참 어렵다. 돈이 생기면 귀신같이 돈 나갈 구석이 생기고 마니까. 억지로 눌러왔던 쇼핑욕구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래도 올해 들어서고 나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돈과 몸 관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의 등굣길 이외에는 딱히 외출할 일도 없는 내가 옷에는 왜 그리 욕심을 부렸는지. 가득 찬 옷장의 옷들을 번개장터에 헐값에 내놓으면서 현타를 제대로 맞은 탓이다. 예쁘다고 생각한 옷들도 불어난 몸무게 때문에 마음에 드는 핏도 제대로 살지 않았다. 일이 없으니 집에서 자연히 늘어지고만 싶고, 그러니 몸무게는 야금야금 늘고 악순환이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아이 등교 후에 곧장 헬스장으로 향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아이와 같이 백팩에 운동화와 물통을 넣은 채 나만의 출근 의식을 치른다. 3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했으니 벌써 두 달째다. 눈에 띄는 체중의 변화는 없지만 늘어져 있던 살들이 조금씩 올라붙은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일이 없다고 처져 있을 순 없지. 체력이라도 미리 길러놔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운동을 하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일에 대한 갈망이 차올랐다. 그러다 무심코 열어본 메일함에 반가운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30분 전에 도착한 따끈한 메일이었다. 한동안 방치해 뒀던 비즈니스 메일이었는데 이토록 완벽한 타이밍이라니. 이미 몇 년간 함께한 회사의 작업을 눈여겨봐왔고, 회사에 직접 컨택을 요청해 연락을 했다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스스로 능력을 보여야 하지만 명확한 평가기준은 따로 없는 프리랜서 시장에서 알음알음 이어지는 소개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다. 일이 없을 때는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해 한없이 의심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반면 가뭄에 단비처럼 찾아오는 이런 연락들은 다시금 가슴을 콩닥이게 한다. 이럴 때 보면 진정한 일희일비의 아이콘이 아닐까 싶지만... 어쩌면 모든 프리랜서들의 숙명인지도.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연고 없는 타지에 내려와 살면서 '프리랜서'라는 직함은 내게 자부심이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 모두 자의적인 선택이었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자아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년 365일 바쁜 엄마가 아니면서도 아이에게는 늘 일하는 엄마임을 강조하곤 했다. 그건 또 어떤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괜스레 그러고 싶었다. 


어쨌든 약 4개월간 지속되었던 전업주부 생활은 당분간 프리랜서 모드로 바뀔 예정이다. 돈도 돈이지만 일하는 내가 좋다. 쓰임으로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낮은 자존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묻히지 않고 나아가고 싶다. 이렇게 마음에 활기가 드는 게 얼마만인지. 반가운 메일 한 통에 비로소 세상이 봄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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