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남겼다는 엄마의 마지막 말,
이제 너희와 연락을 하지 않겠다.
그 말은 진짜 연을 끊겠다는 뜻이 아닌,
'딸인 네가 나에게 와서 다시 고개를 숙이라'는 뜻임을 알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난 후 다시 시작된 구토와 두통 증상을 겪으면서 욕지기가 일었다.
남편이 듣던 말던 험한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대체 당신은
엄마의 그런 부당한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느냐고,
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자신의 설움 따위나 지껄이는 말들이
곧이곧대로 들어지더냐고,
누워있는 날 대신해서라도
분노해줄 수는 없었느냐고.
미친년처럼 노려보면서 쏘아붙였다.
남편은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너의 엄마'이기 때문에
다시 또 '엄마'라는 굴레에 빠져버렸다.
엄마는 딸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데 딸은, 사위는 그 자리를 그렇게 존중해야만 하는 것일까.
분노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내 속도 모르고 교과서 같은 대답을 내놓는 남편이 그날은 전혀 고맙지 않았다.
'나'는 오롯이 '나'일 수 없는 것일까. 지독하게 답답하고, 외로웠다.
정신과 교수는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내게 뭐라고 첫 질문을 던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내가 그동안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었던 말, 그러나 그런 마음조차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쉽사리 꺼낼 수 없었던 나의 기억과 감정들을 토해내듯 쏟아냈다.
그녀는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놔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노드라마를 찍듯 엄마를 증오하게 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수도 없이 많은 이유들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나는 말끝마다 변명하듯 이런 말을 덧붙였다.
물론 엄마도 힘들었을 거예요.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애를 혼자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안돼요.
몸이 아프기도 했고, 삶도 고됐겠죠.
딸한테 이해받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죠.
엄마가 힘들지 않았다는 게 아니에요.
나도 이해가 필요했다는 거예요.
그때는 너무 어렸고, 지금은 너무 아파요.
힘든 마음을 가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때는 이런 제가 너무 싫어져요.
한참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이 독감에 걸렸어요.
열이 나고, 기침도 나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더 심한 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어요.
그럼 환자분이 아픈 건 안 아픈 게 되나요?
그렇진 않죠
바로 그거예요. 환자분도 아파요.
어쩌면 더 아플 수도 있죠.
고통을 겪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니까.
누구에게 설명하거나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죄책감 갖지 마세요.
자신의 아픔에 좀 더 당당해져도 돼요.
자꾸 이유를 덧붙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전형적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는 건조한 말투였는데, 지금껏 누구에게 들었던 말보다 명쾌했다.
'그래도 너의 엄마니까, 네가 이해해야지. 네가 불쌍하게 여겨줘야지. 어쩌겠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말해준 적 없었다. 누구도 내게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아파도 되는 거였다니. 미워해도 되는 거였다니.
엄마를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는 이런 나 자신이 늘 부끄러워서 괴로웠는데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교수는 엄마가 내 병실을 찾아왔을 때 과일과 음식을 싸온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미션을 줬다.
그 먹지도 못할 과일에 엄마의 애정이라도 담겨 있다는 대답을 원하는 건가.
그녀의 한마디 말에 순간 위로를 받았으면서도 내게 낸 그 숙제는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다.
밤새 그 답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도 자지 못하고 몇 번의 구역질만 반복했다.
다음날 만난 그녀에게 난 이렇게 답했다.
보여주기 식 겉치레죠.
수술을 끝낸 내가 먹지도 못할 음식들,
본인이 나한테 이만큼은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과
자기 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수가 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머릿 속 회로를 돌리는 과정은 괴로웠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닌 속이 뒤집어졌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속에서 위액까지 토해내야했다.
그녀는 내게 약을 처방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우울의 정도가 상당하다고.
퇴원 후에도 집에서 가까운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이어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얼마 뒤 나는 퇴원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챙겨 먹는 수술 후 복용약과 함께 항우울제도 처방받아서.
나는 그렇게 말로만 듣던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