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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한테 사과하지 마

by 김윤담

사과하는 엄마를 바랐다. 엄마라는 한 인간이 언제나 도덕적이고 다정하고 침착할 수는 없을 테니까. 용서하고 싶었다. 내게 사과해 준다면 기꺼이. 그러나 엄마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네가 느끼는 고통보다 내가 더 오랜 세월 더 깊이 힘들었다고, 그까짓 것으로 내게 사과를 요구하지 말라고, 엄마는 말했다. 빈 말이라도, 연기여도 좋으니 그래도 한 번쯤 미안하다고 해주지, 그럼 내가 당신을 사랑할 텐데. 정말로 사랑하고 싶은데.. 그런 마음을 품으며 자랐다.


영원히 내게 미안해하지 않는 엄마를 떠나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사과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아이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겠지만 언제나 내 행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겠노라고. 그리고 정식으로 사과하겠노라고. 그리 생각해서 그리했다.


아이 앞에서 기분이 태도가 되던 날, 인내심이 부족하던 때, 컨디션 저하로 뾰족한 짜증이 추스를 새도 없이 치솟던 순간, 돌아서면 후회와 미안함이 올라왔다. 감정이 가라앉은 밤이 되면 아이를 끌어안고 고백했다. 그런 모습을 보여 미안했다고. 엄마의 진심은 아니었고, 엄마는 완벽하지 않으니 이해해 줄 수 있겠느냐고. 말간 눈의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눈빛과 고갯짓을 보면 안심이 됐다. 나는 엄마와 다른 부류의 엄마라는 걸 확인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어느 날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이에게 로션을 발라주는데 오른쪽 엄지발톱이 다 뜯겨 있었다. 손톱깎이로 자른 것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쥐어뜯은 모양새였다. 놀라서 발톱이 왜 이렇게 됐느냐고 묻자 아이의 눈빛에는 당황과 두려움이 서렸다. 혼날까 봐 겁을 집어먹은 눈치였다. 순간 속에서 의아함과 화가 뒤섞여 올라왔지만 표정을 보니 몰아붙여선 안될 것 같았다.


"네가 발톱 이렇게 뜯은 거야?"

아이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고, 입가를 아래로 늘어뜨리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언제? 어떤 때 발톱을 이렇게 뜯어?"

"엄마가 의심할 때, 화낼 때"

아이는 속수무책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와르르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나? 제 발톱을 삼분의 일이나 뜯고 싶을 만큼 내가 이 아이를 속상하게 했나? 나는 그토록 잔인한 엄마인가?


젖은 머리로 벌거벗은 채 서서 우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가 그럴 때 속상해서 방에서 발톱 뜯은 거야?"

아이는 눈을 비비며 그렇다고 했다.

"정말? 정말?" 계속해서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발톱 뜯고 싶을 때 엄마한테 말해줘. 엄마는 네가 그런 마음이 드는지 몰랐어."

"엄마가 내가 뭐 했다고 하면 안 믿을 때, 핸드폰만 보고 내가 하는 말 안 들어줄 때 방에서 이렇게 해."

"몰랐어. 앞으론 알려줘. 언제 그런 마음 드는지.. 응?"

흔들리는 내 눈빛을 읽은 건지, 아이는 마음먹은 듯 제 속에 묵혀뒀던 말을 줄줄 꺼내기 시작했다.

무척 상세했고, 양도 많았다. 나는 잊은 일도 아이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새겨두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더듬지도 않고 줄줄줄...

"그리고 엄마, 나한테 화내놓고 사과하지 마. 맨날 밤 되면 사과하잖아. 그게 더 짜증 나."

"엄마가 했던 행동이 후회되고 반성하게 돼서 너한테 사과한 건데 왜 하면 안 돼?"

"그럴 거면 그냥 그런 행동을 하지를 말지. 나는 다 안 풀렸어도 엄마가 사과하면 받아줘야 하잖아. 다음 날이 되면 다 풀리니까 그냥 내버려 둬."


머릿속이 괘종시계가 울리는 듯 시끄러워졌다.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구나. 나는 꽤 괜찮은 엄마라고, 아이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고. 사과하는 모습이 멋진 엄마라고, 그런 나의 진심을 아이도 알아줄 거라고. 그러나 이기적이었구나. 작은 아이에게 위압적으로 굴어놓고 내 마음 편하자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바랐구나.


"알았어. 그럼 엄마가 기다릴게. 네 마음 풀릴 때까지. 그리고 네가 지금 말한 엄마의 싫은 행동들 안 하도록 노력할게.. 그런데 완전하게 바뀐다고는 장담 못해. 엄마는 완벽하지 않거든. 부족한 점도 많거든. 그러니까 엄마가 또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엄마를 좀 봐줘. 그래도 사랑한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럴 수 있겠어?"

이렇게 말하면서 하마터면 엉엉 울 뻔했다. 창피해서, 미안해서


육아에 대해 자만하면서 양육을 만만하게 여긴 날이 많았다. 불행했던 내 유년에 비하면 아이는 훨씬 더 안정적인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아주 잘하고 있다고. 내가 채움 받지 못했던 것을 아이에게 채우면서 나는 완전한 행복을 찾고 있다고. 그러나 그럴 리가 없는 거였다. 언제나 빈틈은 있기 마련이었고, 그 사이로 아이는 숨어 홀로 제 발톱을 뜯고 있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아이가 내 치부를 읊어줘서 다 알게 됐으니, 발가벗겨진 듯 창피해졌으니 다행일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후련하게 속 마음을 터놓은 아이 마음이 다시 텅 비었으면 좋겠다. 그럴 리 없겠지만...


언제나 다 안다고, 괜찮다고 믿는 순간에 뒤통수를 맞는다. 지금이 그렇다. 아마 앞으로 더 그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랑을 해야지. 옳은 흉내를 내면서 나아가야지. 심호흡을 한다.


202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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