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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by 김윤담

너에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인생에 두 번의 행운이 있다면 남편을 만난 것과 원하는 때에 아기를 품을 수 있었던 것. 미안해. 아기를 가져보고 싶었던 것은 엄마가 되어보고 싶어서였어. 내게 엄마란 존재는 풀 수 없는 문제 같아서 스스로 문제가 되어보기로 했던 거야. 네가 누구일지 너에게 내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엄마가 된 거야. 그게 끝인 줄 알고 시작해 버린 거야.


언제 내릴지 모르는 돛단배에 올라탄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을 때 후회했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할까 하고. 아기가 잘 자라려면 먹어야 한다는데 너는 내 속을 자꾸 게워내고 그러면서도 무럭무럭 자랐지.

가슴은 미련하게 부풀고 젖꼭지도 크고 까매졌어. 발은 코끼리처럼 붓고 사진 속엔 웬 곰 같은 여자가 들어있었어. 거울 보는 일이 싫어졌어. 때때로 후회했다.

너는 뱃속에서 나오면서도 자꾸 잠드는 순한 아기였다. 간호사가 아기 깨운다고 배를 흔들 때마다 실은 후회했지. 왜 엄마 같은 게 되고 싶었을까.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하지만 알았지. 후회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을. 그건 사랑을 만지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이었잖아. 진통이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넌 내 가슴 위에서 뻐끔거리며 젖을 물 준비를 하고 있었지. 방금 세상에 나온 주제에 이미 다 안다는 듯이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둔 동요를 불렀다. 병원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 불러줄 노래를 골라오라고 했거든. '아빠와 크레파스' 왜 그 노래였을까. 유치한 건 싫어서였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약간은 서글픈 노래였다. 그래도 분만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너에게 그 노래를 불러주었지.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그릴 것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서 아빠얼굴 그리고 나니 잠이 들고 말았어요. 밤새 꿈나라엔 아기 코끼리가 춤을 추었고 크레파스 병정들은 나뭇잎을 타고 놀았죠'


너는 노래를 들으며 따뜻한 물에 목욕했고 곧 울음을 그쳤지. 그리고 꼭 붙어있던 눈꺼풀을 한쪽만 떼어서 주변을 둘러보더라. 그때 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네가 먹고 자고 싸는 일이 세상의 전부였을 땐 너무나 신기했지. 사랑이 뭔지 체감할 수 있었지. 말 그대로 체감. 너를 만지고 듣고 맡고 심지어 너의 발바닥과 배와 엉덩이는 몇 번이나 물었다. 참을 수가 없어서

네가 젖을 무는 동안 우린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었지. 서로의 감촉을 더 깊게 새길 수 있었지.


말문이 트인 너에게 나를 어떻게 찾아 왔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지.

'나는 원래 아기가루였어. 하늘에서 둘러보다가 엄마가 마음에 들어서 엄마 음식에 소금처럼 뿌려졌어. 그렇게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 거야. 그리고 내가 된 거야."

그 말을 들었던 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내가 너를 불러냈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나를 찾아온 거였다고?

우습지만 안심이 되기도 했어.


그런 네가 클수록 나는 더 후회가 됐지. 힘들어서가 아니라 미안해서.

네게는 하루하루 미션이 늘어나고 더 기대하게 됐을 때. 너는 왜 나때문에 세상에 나와서 구구단을 외워야 할까. 알파벳을 익혀야 할까. 그런 것들을 잘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는걸까. 알 수 없으면서도 너는 그런것들을 배워야했지.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내 인생이 막막하고 답답할 때마다 너에게 미안했다. 나도 내가 힘든데 왜 너까지 만들었을까. 진지하게 후회했다. 너도 네가 힘든 날이 올 텐데 너는 아직 후회라는 단어도 모르는데 미안해서 어쩌나 하고.

그러니 부모라는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이니. 우리 둘 유전자를 반반씩 섞인 네가 그저 보고 싶어서 낳았다고 밖에는...


그래도 넌 내게 사랑을 알려주었지. 이젠 나를 안아주기도 하지. 늘 주는 것보다 네게 받는 것이 더 많다. 자주 잊지만 또 그만큼 자주 떠올린단다. 우리가 서로의 짐이 되지 않도록 살아내야지 별 수 있을까.

분명 한건 너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넌 이미 나의 뮤즈이고.

아기가루야, 내 음식 위로 떨어져 줘서 고마워.

네가 처음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 마음에 드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평생 노력할 거야.


이젠 더이상 번쩍 안아 들 수 없을만큼 커버린 너를 기억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언젠가 엄마가 미워지는 날에 꺼내 읽으라고

너를 이룬 모든 날들에 언제나 내가 있었다고

참 어려운 엄마라는 이름으로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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