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팔면서 안도해도 될까

by 김윤담

언제나 아이보다 늦게 일어나는 엄마가 있을까. 그건 바로 나다. 몸이 아직 새것에 가까운 아이는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엄마 팬케이크 해줘 라며 나를 깨운다. 겨울날 극세사 이불에서 몸을 꺼내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지만 어른이니까 엄마니까 일어나 오줌부터 누러 간다. 밤새 사라진 한쪽 쌍꺼풀과 부은 얼굴을 확인하고 주방으로 가 어젯밤 미리 준비해둔 팬케이크 반죽을 달군 후라이팬에 올린다. 버터에 노릇하게 익은 팬케이크와 우유를 식탁에 올려놓으면 딸의 등교 전 내 역할은 끝이다. 아이는 아침식사 후 양치를 하고 머리를 빗고 책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부터 딸은 머리 묶기를 거부했는데 아침루틴 하나가 줄어드니 새삼 편하다. 겨울이라 머리에 정전기가 많이 일텐데 아이는 상관않는 눈치다. 스스로 준비를 마친 기특한 꼬맹이가 집을 나서면 공간에 온전히 혼자 남는다. 평화롭다. 동시에 불안하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혹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자유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면 어쩐지 기운이 조금 가라앉는다. 손가락은 불행의 감각을 더듬어 문자로 빚어낸다. 언제나 쓰고싶은 말들은 지난 기억의 여운이다. 나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잔잔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지난 불운의 시간을 잊지않기 위해 애쓴다. 쓰는 사람의 숙명인 것일까. 지독한 경험은 쓰는 이의 가장 좋은 재료이니까.


동화 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던 남자의 마음을 안다. 구덩이를 파서라도 비밀을 발설하고싶었던 사람. 결국 그 구덩이에서는 나무가 자라고 바람이 불때마다 비밀이 널리 퍼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 자신이 꽁꽁 감추던 콤플렉스가 만천하에 까발려진 임금은 창피했을까. 아니면 내심 후련했을까. 더는 크고 무거운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되니 편하지 않았을까.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나는 들키기 전에 가장 구린 것을 내보이는 게 더 속편한 사람이니까. 모자로 자신의 귀를 가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임금님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나에 대해 기대하거나 짐작하지 마세요. 나는 구멍이 숭숭 뚫린 엉터리 인간입니다.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다면 풀고싶지 않아요. 이해할 수 없다면 지나치세요. 이렇게 외치며 사는 인간이 바로 나다.


평온한 나날 속에서도 불행을 추억하고 기록한다. 자꾸만 그 기억을 파는 이유는 그 과정이 내겐 해소이자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끝이 없을 것만같은 어떤 상처를 드러내 세상에 내보임으로써 나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감히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주제넘는 조언이 아니라 그저 발가벗은 나를 내보이는 것 자체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악성재고처럼 쌓여있던 기억은 차곡차곡 팔리고 홀가분해졌다. 어느새 더 이상 팔 기억이 없을지 두리번 거리면서. 삶을 글로 쓰는 행위는 고통스럽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휘발시킨다는 점에서 치유로 느껴진다. 쓰는 한 내게 또 다른 사건이나 불행이 온다하더라도 그 전만큼 두렵지는 않을 것 같다. 여전히 고통스럽겠지만 이미 지금 이 순간의 고요가 내겐 기적이고 최고의 사치이기에


이런 나의 글을 보며 누군가는 짙은 회색을 떠올리겠지만 현실의 나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민트색 식탁, 초록색 담요, 연두색 잠옷과 분홍색 쓰레기통과 빨간 책장, 무지갯빛 시계,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형형색색 레고 꽃다발.. 일상은 알록달록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나는 자주 웃고 갑작스럽게 운다. 양면의 모습을 결코 자로 잰듯 나눌 수는 없으리라. 특히 나를 꼭 닮은 아이와 지내는 일상은 다큐멘터리보다는 시트콤에 더 가깝다. 어제는 누워있는데 딸이 내 코를 습격해 코딱지를 훔쳐먹었다. 제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코딱지까지 훔쳐먹는 지경에 이른 이 별난 생명체를 보며 경악하면서 하루 하루가 간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오늘 아침에 등교하면서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때 식탁 위에 딸기가 있게 하라'라는 미션을 남기고 간 딸을 위해 빨갛게 잘 익은 딸기를 사러가야 한다. '딸기가 먹고싶다'는 것도 아닌 '딸기가 있게 하라'라니... 옛날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건방진(?) 딸의 요구가 어이없어 너털웃음을 짓는다. 성실하고도 발칙한 꼬맹이의 엄마라서 그래도 좋다.


여전히 나는 자주 죽음을 선망하고 불행의 흔적을 더듬는 인간이지만 일단은 딸기를 사러 가야 한다.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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