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 온 아이에게서는 겨울냄새가 난다

by 김윤담

꼬맹이는 이제 피아노 수업이 끝나도 곧바로 집에 오지 않는 어린이가 되었다. 우리 단지 놀이터를 벗어나 남의 단지 놀이터 뺑뺑이를 타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토록 여미라는 잠바는 늘 열어젖힌 채로 태권도복에 맨발 크록스 차림으로 동네를 누비는 어린이가 되었다. 볼이 발그레하도록 다 식어서 들어온 아이에게는 비릿한 쇠냄새가 난다. 차가운 볼에 손을 대고 킁킁 그 냄새를 맡을때 낯설다. 달달한 아가향이 옅어지고 있다. 어떤 날에는 자고 일어나면 아이가 훌쩍 자라 있기를 바랐다. 목을 가누었으면, 얼른 기었으면, 걸었으면, 말문이 트였으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기저귀를 뗐으면, 등교를 혼자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으니까 마음껏 바랄 수 있었나. 뜻 모를 주문을 외듯 그저 하루치의 아침과 저녁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기억 속 아기는 어느새 어린이가 되어있었다. 엄마 나 피아노 끝나고 다람쥐 놀이터에서 놀다 올게. 5시 40분까지 올게라고 말하는... 벌게진 얼굴로 들어선 현관에서 신발을 제멋대로 던져 벗으면서 태연하게 오늘 저녁은 뭐야? 배고파라고 말하는... 온 동네 바람은 다 맞을 심산이었는지 오늘도 지퍼를 활짝 열고 내 앞에 선 아이를 내려다보며 반사적으로 안 추워? 묻는다. 대답은 당연히 안 추워. 알면서도 정해진 암호처럼 오고 가는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아이들은 왜 추위를 못 느끼는 걸까. 창문 꽁꽁 닫고 집에 있어도 온몸이 시린 나는 어른들이 왜 목이 따수워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했는지 이제는 확실히 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아이들이 추워보인다. 모든 깨달음은 살갗에 와닿는 시기가 다르단 걸 알면서도 녀석이 추위 무서운 줄은 좀 알았으면 싶다. 안 춥다면서도 아이스 모찌처럼 얼어붙은 볼때기가 안쓰럽단 말이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이는 이제 자기도 10대라면서 으스대기 시작했다. 이젠 집 밖의 시간이 더 즐거워질 것이고, 엄마의 잔소리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테지. 점점 화가 날 테고 자신의 인생에서 빠져주기를 바라겠지. 그런 변화는 누가 순서를 정해둔 것도 아닌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가는 걸까. 지난한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지금, 더이상 품 안의 자식임을 거부할 그날이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이 역시 다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일 것이고 여전히 예정된 그 미래가 믿어지지 않는다. 그 시점에 다다라서야 뒤통수를 맞고 정신 차리겠지. 인생은 그런 거다. 제아무리 잘난 척 예습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진정한 때를 맞이해야만 알 수 있는 것. 내일 태권도 캠프에서 1박 2일 합숙하는데 꼬맹이는 지난주부터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마음 잘 맞는 친구와 함께하는 합법적인 외박과 동침이라니 설렐 만도 하지. 엄마 없인 못 잔다고 하면 피곤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거면서 또 쿨한 딸의 태도에 기가 막힌 것도 사실이다. 이 두 가지 감정의 저울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늘 비틀대고 있다. 어쨌든 녀석이 바깥으로 돌수록 나는 점점 더 자유로워질 테니 내게 남은 기나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데에나 더 집중을 해야지. 나도 쿨한 엄마가 될 테다.


202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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