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엄마도 한때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선 #엄마를미워합니다 챕터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난 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원 가정으로부터, 엄마로부터 분리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정서적 학대의 정도로만 따진다면 아마 나보다 더한 사람들도 많을 테다.
신체적으로 학대받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내 지난한 세월은 상대적으로 그에 비해 작은가. 그렇지 않다.
본인의 상처는 항상 절대적이니까.
어찌 되었건 나는 내 상처의 크기를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내 친정과 완전히 결별했다. 완전한 결별을 선언해 놓고도 지난 3년간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후련하다 믿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마음에 물때가 낀 듯 개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 백번을, 천 번을, 아니 만 번을 생각해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로부터 강제로 세상에 소환되어 왔지만,
앞으로 내 삶은 내가 선택해 나갈 거다.
누군가의 수군거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마를 손절하는 독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무형의 손가락질에 밀려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당신보다 더 혹독한 상황이었지만 내 부모를 버리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묻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했냐고, 그래서 세상이 살만하더냐고. 그래서 당신은 부모를 사랑했느냐고.
나는 나처럼 상처받은 어른아이를, 나보다 더 아팠던 어른아이들을 위해 미약하나마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도닥이면서 더 많은 어른 내면의 아이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올 거다.
어떻게 엄마를 버리느냐고,
어떻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래도 먹이고, 입히고, 재워가며
키워준 사람과의 연을 끊을 생각을 하냐고,
사실, 나를 제일 많이 욕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긴 시간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더 잘 알겠더라.
말캉하고 보드라운 이 아이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맨 몸으로 우주에서 날아온 이 아이가
여간해선 나를 버릴 리 없다는 걸...
먼 훗날 이 아이가 내가 밉다고, 나를 떠나려 한다면 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어가면서라도 사과할 거다.
무턱대고 세상에 불러내 물질 아닌 마음도 못 채워준 못난 어미를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슬픈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내가 엄마니까, 나도 엄마니까 이젠 당당할 수 있다.
다복한 가정의 딸이자, 사랑받는 아내, 사랑 많은 엄마, 능력 있는 사회인으로서 이 세상에 한 자리 채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전제부터 틀렸으니 나는 한 가정의 딸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엄마와 아내, 사회인으로 남은 생을 살아볼 테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가슴이 일렁이는 당신도, 부디 가시덤불 같은 가정을 벗어나 세상으로 박차고 나갈 용기가 생기길.
내 글에 그런 힘이 깃들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