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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Jan 23. 2024

엄마를 버렸고, 난 나를 찾았고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엄마도 한때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선 #엄마를미워합니다 챕터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난 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원 가정으로부터, 엄마로부터 분리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정서적 학대의 정도로만 따진다면 아마 나보다 더한 사람들도 많을 테다.

신체적으로 학대받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내 지난한 세월은 상대적으로 그에 비해 작은가. 그렇지 않다. 

본인의 상처는 항상 절대적이니까. 


어찌 되었건 나는 내 상처의 크기를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내 친정과 완전히 결별했다. 완전한 결별을 선언해 놓고도 지난 3년간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후련하다 믿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마음에 물때가 낀 듯 개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 백번을, 천 번을, 아니 만 번을 생각해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로부터 강제로 세상에 소환되어 왔지만,
앞으로 내 삶은 내가 선택해 나갈 거다.

누군가의 수군거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마를 손절하는 독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무형의 손가락질에 밀려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당신보다 더 혹독한 상황이었지만 내 부모를 버리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묻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했냐고, 그래서 세상이 살만하더냐고. 그래서 당신은 부모를 사랑했느냐고. 


나는 나처럼 상처받은 어른아이를, 나보다 아팠던 어른아이들을 위해 미약하나마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도닥이면서 더 많은 어른 내면의 아이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올 거다. 


어떻게 엄마를 버리느냐고,
어떻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래도 먹이고, 입히고, 재워가며
키워준 사람과의 연을 끊을 생각을 하냐고,

사실, 나를 제일 많이 욕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긴 시간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더 잘 알겠더라.

말캉하고 보드라운 이 아이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맨 몸으로 우주에서 날아온 이 아이가
여간해선 나를 버릴 리 없다는 걸...


먼 훗날 이 아이가 내가 밉다고, 나를 떠나려 한다면 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어가면서라도 사과할 거다. 

무턱대고 세상에 불러내 물질 아닌 마음도 못 채워준 못난 어미를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슬픈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내가 엄마니까, 나도 엄마니까 이젠 당당할 수 있다. 


다복한 가정의 딸이자, 사랑받는 아내, 사랑 많은 엄마, 능력 있는 사회인으로서 이 세상에 한 자리 채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전제부터 틀렸으니 나는 한 가정의 딸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엄마와 아내, 사회인으로 남은 생을 살아볼 테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가슴이 일렁이는 당신도, 부디 가시덤불 같은 가정을 벗어나 세상으로 박차고 나갈 용기가 생기길. 


내 글에 그런 힘이 깃들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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