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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Aug 11. 2023

'엄마'에게서 도망친 그 후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도망쳤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여전히 나를 독하다고 얘기할까. 

도저히 쏟아내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브런치라는 일기장에 토해내듯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 것이 벌써 만 3년이 되었다. 

미처 몰랐는데 다시 보니 첫 글을 올린 것도 8월이었더랬다. 

매일 혼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억울함과 서러움에 젖어 지내던 나날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 만큼 떨어져나왔다. 


절대로 희석되지 않을 것만 같은 감정들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만큼 엄마에 대한 감정의 밀도가 높지 않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정말인가보다. 


감정은 많이 희석되었다지만 어쩐지 몸뚱이는 더 나약해져서 한 치앞의 스케줄도 장담할 수 없는 생활 속에 있다. 

그래도 누군가 지금 행복하냐 묻는다면 고민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거다. 


지금은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너무 잦게 찾아오는 신체적인 고통과 병원생활이 나를 괴롭힐때도 있지만, 

전에 나를 옥죄던 마음의 고통만은 못하다. 

올해는 '회복'을 키워드로 나를 신경쓰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만을 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했건만 지난 5월에도 또 응급실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나를 속박하는 모든 외부적인 요건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바깥에 외출하는 일도,

대외적인 업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다 접어두고 

생애 가장 게으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득 이렇게 지내도 되는 것일까 두렵기도 하지만, 내게 남은 긴 인생을 내다본다면 

지금 웅크리고 있는 시간쯤이야 투자할 만 할 것이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간다.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노화가 시작되는 나이인 것을 체감한다. 

나의 딸도 이제 아기가 아닌 어린이로 자라나고 있다. 

내 아이에게 내 엄마같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지내고 있다. 

엄마가 싫어 도망쳐 놓곤 똑같은 엄마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대단하게 무언가를 해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칭찬해준다. 비난하지 않는다. 


내가 내 엄마에게 바랐던 아주 간단한 것들

그것들만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족한 엄마인지라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곤 한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과한다. 

아이는 나를 용서해준다. 


내가 아이에게 사과할 줄 아는 엄마라 좋다. 

기꺼이 사과를 받아주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엄마가 화 낼때도 나 사랑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라고 말해주는 아이가

내 딸이라서 얼마나 고마운지.

그렇게 마음이 건강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로부터 도망쳐 온 나이기에 딸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다. 

내가 아집 가득한 엄마가 될 때 이 아이도 언젠가 나를 떠날수 있단 생각이 스치면 벌써 마음 저릿한 공포가 밀려온다.

가족은 결코 당연한 존재가 아님을. 천륜은 가족을 속박하는 도구가 아님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에 

하루하루 우리 가족의 존재가 늘 고맙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더 이상 엄마로부터 떠나온 나를 스스로 비난하지 않는다. 

내가 살기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그래서 결국 지금은 행복하니 됐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힘든 기억은 글로 적어두고, 이제 머릿 속에서는 많이 옅어졌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와 같이 힘들었던, 아직도 힘든 누군가에게 


이제는 그 다음을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떤 엄마이고, 어떤 엄마로 늙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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