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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고래 Apr 26. 2024

내가 과거와 맺는 관계

흘러가는 구름

저는 과거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요 다 지나간 거 뭐 하러 생각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대인배라면 참 좋으련만, 나에게 내 과거는 항상 머리 위에서 흘러 다니는 구름 같은 존재다. 바쁘게 내 눈앞의 일들만 쳐다보고 있으면 과거를 올려다볼 틈이 없지만 잠시 방심하거나, 맘이 힘들 때면 나도 모르게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과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랑도 느끼고 불안도, 압박감도 느낀다. 과거의 구름들이 머리 위에 가득 차면 보도블록 위에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가듯이 내 일상에도 그림자가 진다. 이전 글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으니 이번에는 불안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나는 불안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다. 처음 나의 이 우울과 불안을 알아차린 건 고등학생 때였다. 잠을 자도 자도 졸리고 계속해서 과거의 일만 떠오르다가 생각을 하기 싫어서 잠을 잤다. 학교에서도 내내 자고 집에서도 내내 잤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성묘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나도 모르게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뭐가 우울하고 힘든 건지 실체를 전혀 모르겠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러지?' 처음 겪어보는 우울은 나에게 불안과 함께 왔다. 우울이 힘든 것보다도 우울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했다. 수능이 끝나면 다 끝날 줄 알고 갈팡질팡하다 그렇게 성인이 됐다.


 성인이 되고 내 머리가 커지면서 나의 그림자는 함께 성장했다. 1학년 초, 침대 밖으로 손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고 남들 다 쉽게 하는 빨래, 방청소가 나에겐 너무 큰 과업 같았다. 지방에서 친구가 올라와 우리 집에서 같이 자면서 놀기로 했는데 한 달 동안 안 치운 방을 도저히 치울 수가 없었다. 5평짜리 원룸 방바닥에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차있는데 그 가운에 이부자리만 겨우 깔아 둔 채로 친구를 맞이했다. 이유를 모르는 우울이라 친구들도 이해해주지 못했다. <나 너무 우울해 -> 뭐가? -> 모르겠네... ->?>의 대화 수순이었다. 이때만 해도 사회에서 우울증이나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처럼 많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엄마 앞에서 "살면서 자살을 생각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있나?"라는 말을 하게 되면서 나는 병원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이 얼마나 병들어있었는지 알겠다.


  2년여간의 시간 동안 병원 치료를 받고서야 나아질 수 있었다. 그 당시 학교 보건소에 있던 정신과에 다녔는데 나를 오랜 시간 돌봐주신 선생님께 평생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다. 상담을 하면서 상처를 받고 나오거나 정신과에 대해 거부감이 생기는 친구들도 많던데, 이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나는 한 번도 선생님이 나를 잘못됐다고 취급하거나 어떤 의도된 길로 이끌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2년이 지나니 그야말로 가랑비에 옷 젖듯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나로 변해 있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기에 이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수 있지만 나에겐 이게 너무나 큰 도약이고 성장이라 뿌듯하다. 하지만 이게 내 안의 우울이나 불안을 완전히 몰아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몇 년을 아파하면서 배운 건 정말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우울이나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우울을 우울해하는 마음, 불안을 불안해하는 마음이더라. "내가 왜 이러지?"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감정을 초조해하고 억누르려 하면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버린다. 마음과 몸은 정말 이어져있다고 느낀 게 한 번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안과 죄책감을 그저 누르고 없애려고만 했더니 공황발작이 왔다. 그런데 이 과호흡은 내가 숨을 잘 못 쉬고 있다고 착각해서 이미 몸 안에 산소가 충분히 있는데도 계속 들숨을 쉬기 때문에 몸 안의 산소는 과다, 이산화탄소는 과소해져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정적 감정을 얼른 몰아내려고 이산화탄소와 함께 계속 내보내려고만 했더니 오히려 몸에 무리가 왔다. 어떤 감정이든 그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고 그냥 내 맘 속에서 일어나고 또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경험이었다. 느껴야 하는 감정의 총합은 정해져 있어서 느끼지 않고 외면하면 사채이자만큼 불어나서 나를 덮쳐 삼키더라. 당시에는 이러다가 내가 정말 죽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웠다.


  지금도 과거는 끊임없이 나를 힘들게도 했다가, 행복하게도 했다가 하면서 머리 위에서 흘러간다. 다만 내가 할 수 있고 또 하려고 노력하는 건, 흘러가는 구름을 막으려고 하지 않는 것과 과거 때문에 느끼는 것들에 시비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 머리 위에 구름이 오고 가는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듯이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책상 위에 로션이 놓여 있다>라는 말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것처럼 지금 내 마음에 불어오는 감정의 바람도 불면 부는가 보다, 흘러가면 흘러가는가 보다를 느낄 따름이다. 


*댓글로 어떤 주제로 다음 글을 쓰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 

미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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