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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Dec 29. 2017

스몰웨딩 아니 미디움 웨딩

2017년 회고 1편: 결혼식

결혼을 준비하면서 두려운 점이 있었다.

결혼을 한 나 자신으로 평가받고싶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회사에 결혼소식을 늦게 알렸다

하지만 내 삶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인데,

어떻게 다르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레스토랑 웨딩”을 하게 되었다.

어른들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 "스몰웨딩"이 되다 만 결혼식을 선택한 건 이상한 곤조 때문이었다.

결혼식 장에 축의금을 내고 식을 지켜보지 않고 후다닥 밥을 먹으러 가는 경우나,

신부가 꼼짝도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아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내 하객들이 15분 정도라도 우리를 위해 집중하고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부른 하객은 서른명 남짓이 되었다.

결혼식을 기꺼이 갈 수 있고,

언제든 3년만이라도 반갑게 만나서 긴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을 부르게 되었다.

대게 그런 경우 청첩장을 주면서도 누군가를 독촉하는 느낌은 덜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살면서 많이 갚아야 할 고마운 인연들이지 싶어졌다.


장강명씨는 5년만의 신혼여행이란 책에서

한국의 결혼식은 미친짓거리, 라고 일갈했다.

그가 보기엔 어떨까.

“스몰웨딩”마저 “신조어와 신문화”가 되어버린 지금.

나는 장강명씨에게 “당신이 이게 내가 세상에 결혼이라는 허구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노라고 말할 것 같다.


사실 알아본바에 의하면 스몰웨딩은 저렴하지 않았다.

재주 많고 시간을 같이 보내줄 친구들이 있다면 모를까,

일반 직장인의 경우 그렇게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준비 과정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자연스레, 비싸지게 마련이다.


예컨데 웨딩업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관행들이 존재하고,

식 당일까지도 트러블들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신부가 선택하고 준비해야 할 영역이 많은데,

음향 등 전문 지식이 부족하면 준비가 어려운 점이 있다.


그걸 조정하기 위해 플래너가 있다.

결혼식 당일의 모든 준비를 도와주는 “디렉터"의 도움을 받았다.

디렉터는 일반적인 플래너보다 많은 일을 한다.

플래너처럼 신부에게 낯선 결혼식 공주놀이를 도맡기도 하고, 식의 진행도 도맡는다.

그리고 그 디렉터를 통해 드레스, 메이크업, 사회자 등 상당히 많은 부분을 도움받았다.


남편과 나는 교통사고, 퇴사, 입사, 업무 적응 등 어마어마한 진통을 겪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은 건 좋은 선택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직장인 한 달 월급이 조금 넘는 정도다.

일반 예식장에서 “홀비”라는 부분이 꽤 비싸게 나간 셈이다.


플래너가 있어도 어쨌든 신부는 바빴다.

식순을 점검하고, 마스터 파일을 만들어

양가 부모님+신랑 등 혼인 당사자들에게 동선을 지시하고.

결혼식에 할 말-부모님 편지를 작성하고.

나눠줄 경품을 구입하고.

마지막까지 친척,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두 번(!)보내고.


대신 결혼식을 하면서 우리가 필요하지 않은 걸 과감히 생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스튜디오 뿐 아니라 스냅 등의 사진을 전혀 찍지 않았다.

악세서리를 하지 않아, 우리 둘 다 좋아할 반지 두개를 맞췄다.

그마저도 자주 끼지 않으니, 두개만 맞춰서 천만다행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어서 원피스같은 드레스를 입었다.

2부 드레스나 한복이 없었다.

한복은 맞추지도, 대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폐백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한 결혼식은, 아주 많이 좋았다.

결혼식에 시큰둥하던 남편도 가끔 “이런 결혼식이라 좋았다”고 말해주었으니.


원피스를 입어서 신부가 아무데나 뛰어다니는 결혼식.

신랑 신부 둘이 앞에서 뭘 많이 말하는 결혼식.

그 내용을 아직까지도 하객들이 기억해주는 결혼식.

가끔 우리도 그 내용에 맞게 살고있는지 떠올려보기도 한다.

나는 쓰면서 한번 운지라 읽을때는 방글방글 웃으며 편지를 읽었는데

이를 듣던 하객이 눈물을 글썽였다는 결혼식.

친척 사진만 찍고 친구 사진은 찍지 않는 결혼식.

대신 폴라로이드와 영상을 찍는 결혼식이었다.

식이 끝나고도 아주 오랫동안 친구들을 배웅하는 결혼식.

쓰고 남은 꽃을 다시 하객에게 선물로 주는 결혼식.

신부가 비뚜름하게, 음악에 맞춰서 건들건들 퇴장하는 결혼식.

아버님이 번쩍 만세를 하는 결혼식이었다.


확실히 수백명에게 축하받는 경험은 압도적이었기에,

돌이켜보면 “정신없지만 재밌는 식이었다”.

가족과 지인만 부른게 아니라 하객이 200명을 넘어갔고, 사실 그날 처음 본 분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미디움 웨딩. 어쩌면 적당히 한국식 문화. 축의금도 받았고, 외국의 스몰웨딩은 아니었다.

적당한 덕담과 웃음이 있었다.

우리들만 하는 결혼식은 아니니까.

여섯명이 호흡을 맞춰야 하는 그림이었으니까.

그래도 좋았다.

친구들의 말마따나, "평소의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을 수 있어서".


친구에게 부탁한 결혼식 영상을 본다.

그 영상 속에선 나는 어색하게, 예쁘게 웃고있었다.

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좋았다.




결혼식 일주일 뒤에 쓴 글을 갈무리해서 올려본다.

올해는 다 갔고, 아직 결혼식 사진은 나오지 않았고,

남자친구가 "남편"과 "김서방"이 된 삶은 이제 익숙해졌다.

오늘 회사에서 종무식을 하면서 경품 추첨 운에대해 생각해보다,

주최를 해도 내맘대로 되지 않았던 결혼식 상품 뽑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올해를 회고하는 마음으로 "결혼식"편을 올려본다.


커버 사진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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