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단 요리를 죽어라 하고있어요"
"무슨 요리?"
"일단 요즘 채소를 많이 먹고 있네요. "
지난주 지인과 근황 이야기를 할때 덧붙인 말이었다. 생각을 덜하고 싶어서 요리만 미친듯이 한다고. 요리를 할 때는 머리아픈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요리를 할 때 신경쓰는 건 두 가지다. 하나.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볼 것. 둘, 채소를 많이 먹을 것. 종종 장바구니에 담았던 양파, 감자, 당근, 토마토, 양배추 뿐 아니라 생전 사지 않았던 채소인 무와 오이, 알배추, 양송이를 먹어보기도 했다.
이게 가능해진 이유는 2주마다 한번씩 배달오는 채소 꾸러미덕이다. 의도치 않게 나는 [야채지옥]에 빠졌고, 머릿속에 이를 어떻게 소진해야 좋을지 계산해 나름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며칠 집을 비웠던 날에도,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오자마자 꾸러미를 꺼내 국을 끓여냈을 정도였다. 배달온지 며칠이 지났는데, 당장 꾸러미를 비우지 못한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품을 하면서 양상추를 찬 물에 담고, 쪽파를 다듬고, 무와 대파를 탕탕 썰어 소고기뭇국과 양상추 굴소스 볶음을 만들었다.
사실, 내가 배달받는 채소들은 일반 마트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채소 꾸러미의 목적 자체가 유통망에 들어가지 못해 자칫 버려질 뻔한 채소를 전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채소들은 이렇게 버려진 "사연"이 있고 해당 업체는 "이 채소를 버려지지 않도록 구출해냈다"라고 말한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출하되기엔 너무 작아서, 너무 많이 생산되서, 비뚜름하게 생겨서, 납품되기로 했다가 미처 못 나가서, 그 외에 판로를 못 찾아서.
예컨데 내가 배달받은 채소의 종류는 종류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꾸러미: 브로콜리 한 개, 시금치 한 단, 아주 작은 사과 두 개, 양배추 반 통, 토마토 세 개, 작은 양파 두 개, 양송이 네 개
두 번째 꾸러미: 방울토마토 한 상자, 오이 두 개(하나는 반절이니 1.5개 정도), 파프리카 한 개, 조그만 양상추 하나, 알배추 한 개, 쪽파 한 단, 아주 작은 무 한 개
이 중 시금치와 쪽파는 납품에 실패했다 하고 오이와 사과와 양상추는 규격에 맞지 않았다. 실제로 상자를 열었을때 사과는 너무 작아서 , 두 번째 오이는 구부러진 모양이라 놀랐다. 제멋대로 자란 친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꾸러미를 받고 어떻게 먹을까? 고민되어 온갖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결국 브로콜리는 크림수프를 만들어 먹었고, 시금치와 양송이는 올리브유와 발사믹, 편마늘을 넣어 덮밥처럼 먹었다. 토마토는 카레로, 양배추와 양파는 닭가슴살, 토마토, 당근을 추가해 미네스트로프-일명 마녀 수프-를 만들어 먹었다.
두 번째 꾸러미도 일주일차에 거의 다 먹었는데, 양상추의 절반은 양상추굴소스볶음으로, 알배추는 된장국을 만들어 먹었다. 쪽파와 무는 소고기뭇국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방울토마토와 오이는 잘게 썰어 레몬즙과 파슬리, 올리브유를 넣어 상큼한 샐러드가 되었다. 아, 남은 양배추 절반과 파프리카는 그냥 오며가며 집어먹었다.
생전 오이를 안 사던 나도 즐겁게 먹었던 오이샐러드. 어글리어스 계정에 레시피 제공해주신 분한테 상줘야한다. 여행 갔다오자마자 해먹은 양상추굴소스볶음과 소고기뭇국. 둘다 처음 도전해본 레시피라는 거.
상자를 처음 받았던 충격이 가시고, 요리를 해먹다보니 점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으니 기뻤다. 그냥 내가 마트에서 "필요한" 것만 샀더라면 영원히 몰랐겠지. 양송이가 쫄깃쫄깃하다는 것을. 근데 다듬긴 정말 힘들다는 것을. 가을무가 이렇게 달큰하다는 것도. 오이가 이렇게 상큼해질수도 있다는 것도. 아, 국과 수프가 맛있어지려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무국과 수프는 오래 끓일수록 좋으니까.
평소에 나는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무언가를 만들고 다듬는 과정은 즐겁고 신선했다. 이렇게 안 써본 재료를 쓰다 보니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하게 되고 요즘 삶을 꾸려나가는 잔재미가 되었다. 열심히 스테이지를 공략해 스킬셋이 추가되는 느낌이 이런 걸까? 마음대로 어딜 갈 수 없는 요즘, 이렇게 새로운 요리를 해 보면서 한 발짝씩 모험을 해 본다.
또, "쓸모"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시장에 들어가지 못한 채소들의 처지에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 요즘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입장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구직 "시장"에서는 나의 쓸모를 끊임없이 어필해야 하는데,문득 "나라는 인간의 쓸모"를 여러 번 생각하게 된다. 이전에 들어왔지만 이젠 타이밍이 맞지 않아 불발된 오퍼, 나에겐 지나치게 큰 책임이 주어지는 포지션 등등. 왜 이렇게 이직이 잦았는지, 왜 이런 경험이 없는지 질문이 들어오면 움츠러들게 된다. 나조차도 "내가 모나긴 했나? 그땐 왜 그런 경험을 쌓지 못했지?" 싶은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겁이 난다. 이번에 정말로 팔리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말이다. 아래의 구절이 왠지 짠했다면 내가 너무 감상적일까.
마치 봉지 속에서 키워지는 애호박 같았다. 시장에서 그런 애호박을 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닐봉지 속에 갇혀 딱 그만큼만 자란 똑같은 규격의 애호박. 동네 사람 모두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조금만 삐져나올 것 같으면 말로 회초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말대꾸를 할 수도, 속을 내보이며 원망을 할 수도 없었다.
-서미애, 그녀의 취미생활
하지만 이 채소도 누군가 사연과 스토리를 부여해 쓸모없음을 개성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나. 시장에서 원했던 것보다 작았지만, 그래서 "1인가구에선 버릴게 없어 좋지 않겠냐"고 새롭게 스토리를 부여받은 양상추처럼. 버려질 뻔한 채소가 "사연"과 스토리를 갖고 나에게 전달된 것처럼 나도 내 여정에 스토리를 부여해야지.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채소가 아니니까. 나한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건 나밖에 없으니까. 구직 시장에서 손뻗어 나를 찾아주길 기다리는 건,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일은 너무 감질나니까.
그 외에도 이 버려진 채소 꾸러미가 갖는 거시적 장점을 알고 있기도 하다. 친환경 농가에 대한 지지, 농산물 유통 과정에 대한 대안, 그리고 음식물 낭비를 막는 일 등등. 요즘은 소비가 어떤 신념에 대한 투표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난 이 꾸러미에 "재구매"라는 지지표를 던질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 말을 아끼고 싶다. 대신, 그저 안타깝게 버려질 뻔했던 채소와 인연이 닿아 새로운 의미와 기쁨을 찾는 그 자체가 즐겁다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꾸러미가 올 날짜를 달력에 표시해두고 이번엔 어떤 채소를 만날까 기다려아지. 채소를 기다리고 요리해먹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열심히 찾아봐야지.
야채는 여기(어글리어스)서 사먹고 있습니다. 부족한것은 틈틈히 마트에서 사고요. 2회만 간보기로 주문했는데 추가 주문 완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