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하면서 미니멀 라이프 관련 매거진을 만들고 두세가지 글을 써놨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내 글과 정반대로 살았다. 맥시멀리스트(미니멀리스트의 반댓말 정도?), 혹은 호더(*무엇인가를 계속 쟁이고 쌓아둔다는 뜻)로 3년 넘게 살았으니 말이다.그런 와중에 "미니멀" 관련 키워드로 계속 브런치에 유입이 되니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니멀 플로우에 대한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걸 보면, 이런 마음을 한번 옮겨놔도 좋겠다 싶다. 이런 고백을 본다면, 독자들도 속았다는 생각보단 공감을 좀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고보니 어쩌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싶었지?
"하지마! 버리지 말랬지! 그건 안 돼!"
때는 2014년 추석. 이전에 말한데로 나는 오래된 집에서 3대가 모여 살았었다. 10년전 이사간 이모네 책까지 포함해 그득그득한 짐더미에 살고있었다. 이걸 보다못한 엄마가 사주해 정리 대마왕 사촌이 책을 정리해주겠노라 나섰다. 책을 너무 좋아했지만 책을 맘껏 사서 볼 수 없었던 나는 취업하자마자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책꽂이가 미어터지고 있었다. 책을 정리하는 내내 나의 비명으로 가득찼지만 그 덕에 책꽂이 두 개가 가득찰 정도였던 책칸이 2개로 줄어들었다.(이 이야기는 미니멀의 이유, 라는 에세이에도 썼더랬다.)
이를 시작으로 미니멀리스트 관련 에세이를 보았다. 당시 일본발 미니멀리스트 책이 유행하고 있었고, 미니멀라이프라는 카페에 가입해 눈팅했다. 결혼하기 직전에 미니멀을 접해서인지, 결혼할 시작할 때 그래도 물건을 쟁이고 시작하지 않을 수 있었다-하지만 돈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물에 녹는 솜사탕을 놓친 라쿤처럼 허망해지는 점도 있다. 이 이야기는 가계부 관련 글에서 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는 무엇을 쌓아둔 것인가?
우선 디지털 (왕창) 호더이다. 진민영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조그맣게 살거야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맛에 대한 집착을 줄이기 위해 간단한 카레류만 주로 해먹으며, 정보의 과잉 소비를 경계하기 위해 프로젝트가 끝나 쓸모가 다한 자료들은 전부 지운다"고. 예컨데 영상 촬영이라면 결과물만 남기고 원본은 지워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다. 나는 카레도 좋아하지만 다른 요리하는게 즐겁고 특히 디지털 자료를 절대 못 지우겠다. 물론 쓸데없이 자라는 독버섯같은 자료는 솎아내야겠지만, 내가 아예 업종을 바꾸거나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나는 영원히 이 자료를 지우지 않을거다.
무엇을 그렇게 쟁이는 걸까? 2018년 백서, 이전에 힘들게 구했던 논문 자료들, 좋은 글인데 아직 못읽은 아티클을 열어둔 브라우저 탭, 기획자로서 이건 참고해야지! 싶은 화면의 스크린샷, 마음에 들어 캡처해둔 문구, 호기심에 신청한 뉴스레터 등등이다. 책을 읽고 인용구를 모아두는 텍스트파일에는 어찌나 텍스트가 많은지 맥북 기본 메모장으로 열려고 시도하면 버벅이다는 경우가 많다. 정리라도 잘 해두면 나중에 써먹을텐데 쌓이는 속도에 비해 정리하는 건 무척 힘들다.
특히나 탭의 경우 문제가 심각했다. 크롬 브라우저는 메모리를 많이 차지해 창을 많이 띄우는게 좋지 않다. 그럼에도 모바일크롬으로 탭을 100개나 띄워 :D 마크가 뜨는 것은 기본이요, 컴퓨터가 버티지 못하고 재부팅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이야기를 운영중인 뉴스레터에 고백했더니 다들 안타까워하면서 브라우저를 "원탭"프로그램을 추천해주셨는데, 사실 이미 원탭 프로그램에서 세 번 정도 브라우저 저장 결과를 날렸다고 할 정도면 말을 다해야 할까? 특히 회사에서는 리서치할 일이 많았는데, 회사 컴퓨터 원탭을 잃어버렸을때 1년치 회사 기록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참고로, 원탭에 내가 저장해둔 최대 브라우저 탭 갯수가 700개였다(...)
이런 인간이 환장하는 게 클라우드나 SaaS 서비스인데, 사실 클라우드 서비스도 무한한 것은 아니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도 결국 돈이고, 회사는 거기에 과금을 하니까. 최근 구글 포토가 사진 용량에 대해 과금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약간 철퇴를 맞은 느낌을 받아 사진을 지우기 시작했다. 또 클라우드 컴퓨팅 가동하는게 엄청난 전기를 잡아먹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할수도 있다고 한다. (사실 비트코인이 더 큰 문제라는 말도 있다) SaaS를 환장하리만치 좋아하고 클라우드 관련 업체에 다녔고 미국 클라우드 주식(snowflake..)과 ETF(clou...)도 야금야금 사고있으며 조만간 상장할 SaaS 관련주(stripe...)도 손에 꼽아 기다리고 있는 인간 - 이름을 권구름으로 바꿔야 하나 - 으로서 개인적으로 고민인데.. 조만간 안 읽는 뉴스레터를 지워야 겠다.
디지털이 아닌 현실 물건들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 일단 잡동사니를 못 버린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실패한 물건이라도 그렇다. 손소독제 만들려고 산 에탄올과 글리세린, 엄마 드리려고 샀다가 기종을 잘못 주문한 핸드폰 케이스, 세척이 어려워 다시 쓰지 않게 된 스테인레스 빨대. 너무 멀쩡한데, 새것인데 누군가 쓰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결국 저 물건들은 1년 넘게 갖고 있었고, 얼마전에 당근마켓에 무료나눔으로 올렸다. 전부 나가서 다행이었다.
같은 물건을 사는 것도 문제다.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같은 물건은 딱 하나만 남겨두고, 비슷한 종류가 있으면 그 물건에는 얼씬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남편과 내가 하는 말이 있다. 하나는 없는거고 셋은 둘이다. 비빔면 몇개 끓일지 고민하는 것같은 이 말은 사실 짝을 이루는 물건들에 대한 대사다. 예컨데 오븐용 장갑을 일부러 세 짝을 산다. 그래야 잃어버리지 않으니까. 한편, 물건을 잘 못찾는 남편에게는 귀마개와 립밤이 필수템이다. 그래서 이를 10개쯤 산다음 옷과 가방 주머니 하나마다 전부 넣어두는데, 그래야 찾지 않을 수 있어서 편하다나.
미련이 남은 옷들도 있다. 나는 첫 직장생활을 대기업에서 시작해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었지만, IT 업계로 옮기게 되면서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주말 옷과 주중 옷이 같을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내 옷은 많지 않은 편이다. 행거 두 칸에 옷장 하나, 서랍장 2개정도. 하지만 결혼과 함께 변수가 생겼다. 살이 찐 것이다. 살이 쪄서 무릎길이 원피스가 미니원피스가 된 경우도 있고, 아예 버클이 잠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좋아했던 옷들이 많아 리빙박스를 "미련상자" 삼아 옷을 남겨두었다. 그런데 미련상자가 어느덧 두 상자가 되어가고 있다. 혹시 내 뱃살이 좀 빠지면 다시 입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외에도 혹시나 하는 맘에 쌓아둔 비닐봉지와 투명 플라스틱 상자도 많다. 그대로 버리기엔 양심 찔려서 어떻게든 다시 활용해 보려고. 그런데 이미 한달 만에 쌓인 비닐봉지만 백개다.
이런 사람의 부작용이 있으니 집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못 찾는다는 점이다. 아마 물건이 증식해서인것 같은데 물건의 위치는 제자리로, 라는 원칙도 아는데 자주 흐트러지곤 한다. 그렇게 에어팟 한 짝과 슬리퍼 한 짝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집에는 카오스가 탄생해버렸다. 이사가면 나오겠지.
그래도 버릴땐 버린다.
이런 나는 물건을 어떻게 버릴까? 한번 생각에 변화가 생겼을때 싹 비우는 편이다. 이번달에 내가 오랜만에 비운것이 있었으니, 앞서 말한 원탭 브라우저와 두 칸 정도에 담긴 명함과 종이자료, 그리고 네이버 지도에 저장해둔 위시리스트이다.
원탭 브라우저는 내가 모든 트렌드를 익히고 따라가고싶다는 마음을 상징한다. 이번에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줄이면서, "지금"나에게 의미있는 글들을 저장해두었다. 그래서 원탭에 담긴 탭을 700개에서 20개 이내로 줄일 수 있었다. 해당 리스트를 훑어보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이 과정에서 재밌고 진귀한 글들을 많이 발견하고 주변에 공유하기도 했다.
저 전체 탭이 700개에서 줄어들었단 말씀. 1년간의 목표였는데 드디어 해치웠다. 만세.
명함과 종이 팸플릿들은 어쩌면 이 회사나 사람들에게 내가 연락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드리기보단 메일이나 SNS 계정으로 그분들을 찾을 수 있으니, 미련없이 명함을 버리기로 했다. 개인정보 문제가 신경쓰이니, 뭔가 파괴욕구가 생길때마다 명함을 찢어서 버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 지도에 저장해둔 위시리스트는 언젠가 가보고싶은 카페나 멋진 레스토랑들을 저장해두는 용도였다. 지도 하나하나를 다닥다닥 매울 정도로 저장된 공간이 많았는데, 요즘 외식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져 손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아마 올해 가을에 전세 만기되는데, 그전에 이사를 갈 것 같다. 들어와서 살림이 불어난 케이스라, 각잡고 하는 이사가 두렵기도 하다. 그러니 그전까지 열심히 기다려야겠다. 생각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꽂히면, 옷도 귀마개도 한번에 정리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