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with 케이팝] 기억을 걷는 두 사람, 이옥봉과 넬
고전문학과 케이팝!
고전문학이 지루하다고요? 케이팝이 있잖아요. 열공 분위기로 변신시키는 우리의 케이팝 매직! 이번에는 서정적이고 쓸쓸한 음색으로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로 노래하는 넬의 띵곡 ‘기억을 걷는 시간’을 이옥봉의 ‘몽혼’ 수업에 초대합니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당신 요즈음 어찌 지내시는지요
달빛 드는 사창에 첩의 한이 깊어갑니다
만약 꿈속의 넋이 오가는 자취를 남긴다면
문 앞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
헤어진 임에게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은 임을 그리며 밤을 보내노라 이야기한다. 자신이 임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정도가 어느 만큼이냐 하면, 꿈속의 넋에게 오가는 자취가 있다면 문 앞 돌길의 반이 모래가 되었을 만큼이라 말하며, 자신의 그 애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임 그리움에 꿈길로 찾아가다
‘몽혼’은 남편 조원에게 내쳐진 후 그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담아 쓴 시이다. 이옥봉이 조원과 결별하게 된 까닭은 다음과 같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 여자가 찾아와 자신의 남편이 소도둑으로 잡혀갔으니, 조원으로 하여금 그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해당 부서의 관원에게 선처를 구하는 글을 부탁하였다.
이옥봉은 사정을 딱하게 여기고, “남편에게 부탁할 수는 없으니 내가 소장을 대신 써주겠노라.” 하고 해당 관청에 한 편의 시를 써 보냈다. 시의 제목은 위인송원(爲人訟寃: 원통한 송사를 아뢰옵니다)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 맹물을 기름 삼아 머리를 빗네 / 첩의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 남편이 어찌 견우일까요?’
시를 본 관원들은 죄인을 풀어준 후 조원에게 찾아가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조원은 이옥봉이 함부로 관청의 일에 관여했음에 크게 분노하여 그녀를 친정으로 돌려보낸 후 다시는 부르지 않았다. 이옥봉은 마지막까지 조원을 사모하며 수절하다 결국 임진왜란 때 죽었다고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몽혼(夢魂)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조재현, 강명관, 위키미디어 커먼즈)
이 시는 첩으로 표현한 시적 화자의 진솔한 목소리를 통해 헤어진 임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임의 안부를 솔직히 물은 다음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을 과장법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아직도 당신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당신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당신의 흔적 안에 살았죠
아직도 당신의 모습이 보여
아직도 당신의 온기를 느껴
오늘도 난 당신의 시간 안에 살았죠
이렇게 낮이나 밤이나 매일매일 헤어진 임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 얼마나 애절하고 간절한 마음인가.
이 시의 창작 시기는 대략 1589년 이후로 본다. 그로부터 약 400여 년이 지난 1999년, ‘넬’이라는 모던 록밴드가 결성이 된다. 멤버는 김종완(보컬, 기타, 키보드), 이재경(기타, 키보드), 이정훈(베이스, 탬버린, 키보드, 코러스), 정재원(드럼, 코러스)이다.
나무위키 설명에 따르면, 넬의 노래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반주와는 대조적으로 가사가 매우 우울하고 상처를 후벼 파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미있는 점은, 넬의 모든 노래가 김종완 작사·작곡이라는 것이다. 반주도 김종완이 만들고, 가사도 김종완이 만드는데 전체적으로 감성적인 성향을 띤다고 했다. 음악을 들어보면 사실 밝은 분위기의 곡이 거의 없다.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기억을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에 대해 어느 유튜버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행복할 땐 멜로디가, 우울할 땐 가사가 들리는 명곡”이라고. 사람들이 완벽한 해석이라고 난리를 쳤다.
2008년 이 곡이 발표되었을 때는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엄정화, 이효리, 주얼리 등이 함께 활동하던 시기로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을 치르던 해였다. 아이돌들이 중심을 이루는 음악프로에서 당시 1위를 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이다.
노랫말을 들여다보면, 화자 넬 역시 사랑하던 임과 헤어졌다. 당연히 옥봉처럼 밤낮으로 매일 임을 그리워하고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 모든 게 함께 했던 그때를 추억하고 기억하고 있다.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지금도 난 너를 느끼죠
이렇게 노랠 부르는 지금 이 순간도
난 그대가 보여
내일도 난 너를 보겠죠
내일도 난 너를 듣겠죠
내일도 모든 게 오늘 하루와 같겠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 위에도
물을 마시려 무심코 집어든 유리잔 안에도
나를 바라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니가 있어
어떡하죠 이젠 어떡하죠 이젠
그대는 지웠을텐데 어떡하죠 이제 우린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 넬, ‘기억을 걷는 시간’
참으로 가슴이 미어진다. 그리움의 문을 열고 시도 때도 없이 임의 기억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옥봉과 넬은 추억 속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사는 게 오히려 불행할 수도 있겠다. 그렇담 빨리 그 추억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삶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기억을 걸으며, 또 기억을 걷어내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잊어야 한다. 기억을 걷는 시간은 그래서 필요할 것이다. 걸으면서 정리하고, 걷어내면서도 정리해야 한다. 자꾸만 그 시간들을 정리해야 한다. 사랑도 정리가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