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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Oct 03. 2022

김춘수의 강우 vs 아이유의 미아

[현대문학-with 케이팝] 쏟아지는 저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해

현대문학과 케이팝!

현대문학에서 케이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는 단연 현대시입니다. 현대시와 케이팝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 대상이 됩니다. 시는 노래가 되고 싶고, 노래는 또 시가 되고 싶은 둘의 모습에서 우리는 효과적인 문학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 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맴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 김춘수, ‘강우(降雨)’     


이 시는, 

아내의 죽음에서 비롯된 화자의 허전함과 슬픈 감정을 애절하게 노래한 시이다.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장면을 통해 아내를 잃은 상실감과 절망감, 그리고 체념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화자가 처한 상황과 정서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시를 감상하는 것이 이번 수업의 단원 목표이다. 아이들한테 묻는다.     


7행부터 10행까지는 화자가 불러도 아내가 대답이 없다. 여기에는 공허함과 단절감이 잘 드러나 있는데, 어때? 과연 공허감이 느껴져요?     

 

아이들 왈, “아뇨~” 

이런,,, 그렇담 이 노래 한번 들어볼까요?      


거울 속에 내 모습은

텅 빈 것처럼 공허해

혼자 길을 걸어봐도

텅 빈 거리 너무 공허해

Da ra dat dat dat dat dat dat

Baby don't worry

너란 꿈에서 깬

현실의 아침은 공허해

- 위너, ‘공허해’에서     


그럼 여기에선 공허한 감정이 느껴져요? 

아이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옛~설~”

난 기죽은 소리로, 헐!     


다시 수업 모드.

17행에서는 드디어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인 화자가 현실적으로 절망하고 있어요. 슬픔을 증폭시키는 소재인 ‘비’와 관련하여 감상해 보세요, 어때요?     


또다시 시무룩한 표정들.

그렇담, 비장의 무기를 꺼낼 수밖에.     

 

우리 둘 담아 준 사진을 태워

하나 둘 모아 둔 기억을 지워

그만 일어나 가야 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왜 난 주저앉고 마는지

쏟아지는 빗물은

날 한 치 앞도 못 보게 해

몰아치는 바람은

단 한 걸음도 못 가게 해

벼랑 끝에 서 있는 듯이

난 무서워 떨고 있지만

작은 두 손을 모은

내 기도는 하나뿐이야 돌아와

- 아이유, ‘미아’    

 

수업용 스피커를 통해 아이유의 데뷔작 ‘미아’를 들려준다. 단박에 노래를 흥얼거린다. 잘 안다는 것.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vs 쏟아지는 빗물은 날 한 치 앞도 못 보게 해

선생님이 이 노래를 여기서 왜 들려줄까요?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쏟아지는 빗물은 날 한 치 앞도 못 보게 해’라는 이 가사 때문이죠. 

그렇지! 바로 이거야!

시의 17행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와 싱크로율 100% 이지.    

  

시인과 작사가께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시와 대중가요의 제목은 서로 바꿔도 통한다.

인생의 반려자를 상실했으니 시인은 미아가 된 기분일 거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으니 노래의 주인공 역시 슬픔과 절망의 비가 내리는(강우) 기분이리라.  

    

그래서 또다시 내가 역설한다. 

대중가요는 시라는 것!

제발 음악 프로그램에서 오빠들 춤만 보지 말고 자막에 나오는 노래 가사를 좀 보라고. 그거 읽고 감상하는 게 수능 詩공부라고고~~     


직업의식의 발동인가, 이 가사를 쓴 작사가가 궁금해졌다. 

노랫말을 거의 시 수준으로 쓰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     


최갑원.

당시 로엔 엔터테인먼트 및 뮤직큐브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천하의 아이유를 데뷔시킨 사람이네. 현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중심의 음악 레이블인 연예 기획사 플렉스엠의 대표이다. 하, 정말 잘 나가시는 분이다.      


예전에 말이다. 

이런 기사가 모 스포츠신문에 났었어요.     


- 신인 가수 미아, `폭발하는 가창력`

11일 오후 서울 강서구 88 체육관에서 열린 M.net 생방송 ‘엠카운트다운’에서 신인가수 미아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IU(아이유)’를 열창.     


하긴, 김 모 가수가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런 실수도 했다고 하더군.     

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 ㅋㅋ   

  

자~자~ 다시 교과서 집중하고 작품 개관을 정리하죠. 그러나 이미 수업 분위기는 파장(罷場)으로 직진 중인데 뭘 정리하고 자시고 할 게 있어? 아이유의 '미아'나 다시 들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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