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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Sep 11. 2022

정지상의 송인(送人) VS 버즈의 가시

[고전문학-with 케이팝] 오, 싱그러운 봄날의 슬픔이여

고전문학과 케이팝!

고전문학수업이 지루하고 지루하다고요? 케이팝이 있잖아요. 이번 문학수업에는 버즈의 가시와 정지상의 송인을 엮어 보았습니다.



비 갠 긴 언덕엔 풀빛이 푸르른데,

남포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거나, 

해마다 이별 눈물 강물에 더하는 것을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 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 동비가)

大洞江水何時盡(대동강수 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 첨록파)

- 정지상, ‘송인(送人)’     


자연사와 인간사의 대비

봄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더니 드디어 맑게 개기 시작하고, 긴 언덕 곳곳에는 싱그러움이 가득하여 푸르름이 더해간다. 얼마나 아름다운 봄의 모습인가? 이렇듯 자연은 푸르고 싱그러운데 화자는 임을 보내야 하는 슬픔에 젖어있다. 이게 우리 시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사와 인간사의 대비 구성이다.   

  

알려진 대로 이 작품은 우리나라 한시 중 이별가의 백미이다. 7언 절구의 한시로, 자연 경치의 서경(敍景)과 인간 마음의 서정(敍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자연사와 인간사의 대비는 당연히 이별의 정한을 심화시켜 준다. 사실 화자의 슬픔을 독자에게 어필하려면 당연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데리고 와야 하는 것. 시를 좀 써본 사람한테는 이게 수학의 공식이고, 종교의 율법이며, 우주의 섭리라는 것쯤은 주지의 사실!      

그런데 이걸 ‘아미(ARMY)’도 아닌 ‘버즈(BUZZ)’가 알고 있다. 한때 남자들끼리 노래방에 가면 무조건 부르는 애창곡 1순위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민경훈이 보컬로 활동한 5인조 남성 밴드 그룹 버즈가 부른 ‘가시’였다. 그 띵곡 ‘가시’가 오늘 포스팅의 주제이다. 우선 ‘가시’의 노랫말을 보자.    

 

너 없는 지금도 눈부신 하늘과

눈부시게 웃는 사람들

나의 헤어짐을 모르는 세상은

슬프도록 그대로인데

시간마저 데려가지 못하게

나만은 널 보내지 못했나 봐

가시처럼 깊게 박힌 기억은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그대 기억이 지난 사랑이

내 안을 파고드는 가시가 되어

제발 가라고 아주 가라고

애써도 나를 괴롭히는데     


버즈의 가시, 아무도 몰라주는 나의 이별

앞부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는데 그 사실조차도 자연과 세상은 모르고 있다고 한다. 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일인데, 아무도 나의 실연에는 관심이 없다. 여전히 하늘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자연사와 인간사의 대비로 말미암아 화자의 슬픔이 돋보이지 않은가?     


첨언하자면, 정지상은 고려 시대의 문인이며 정치인이다. 승려 묘청과 함께 서경 천도를 주장하고, 금나라를 정벌할 것을 역설하다가 당시 주류인 김부식에게 참살당했다. 억울하게 죽은 정지상을 동정하는 민간의 야사가 이규보의 「백운소설」에 전해오는데, 일방적으로 김부식이가 발리는 이야기이다.    

 

버들 빛은 일천 가닥 실처럼 푸르고 柳色千絲綠

복사꽃은 일만 점이 붉는구나 桃花萬點紅     


하였더니,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의 귀싸대기를 치면서, “일천 실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 보았느냐?      


버들 빛은 가닥가닥 푸르고 柳色絲絲綠

복사꽃은 송이송이 붉는구나 桃花點點紅     


라고 왜 하지 않는가?” 하자 김부식이가 유구무언이라더라. 

라이벌끼리의 대결이 참 유치 찬란하지만, 그만큼 세상은 일찍 스러져 간 천재 시인 정지상을 아쉬워한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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