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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Sep 09. 2022

소월의 진달래꽃 VS 마야의 진달래꽃

[현대문학-with 케이팝] 소월의 진달래꽃, 케이팝으로 대히트

문학수업과 케이팝!

현대문학수업에서 시는 시시하답니다. 시 내용이 쉬워서도 아니고 감상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그냥 시니까 시시하대요. 나름 언어유희로 재미없음을 표현한 것이지만 순간 서늘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축 처지고 늘어진 분위기를 바로 살리는 오늘의 케이팝, 마야의 진달래꽃입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두말하면 잔소리, 입만 아프지

민족시인 김소월(素月)의 진달래꽃은 문학 교과서에 어김없이 실려있다. 한국인 귀화 필기시험에 진달래꽃의 지은이가 누구냐는 문제가 나온다고 하는데, 이 말인즉 김소월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 국민 애송시 1위이며,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 그 시의 주인공 김소월은 교과서에 맨 처음으로 시가 등재된 시인이다. 또한 그의 시는 많은 가수들이 대중가요로 불렀다. 소월의 시에 멜로디를 붙여 만든 노래가 390여 개가 된다고 하니 가수라면, 또 작곡가라면 탐낼만한 시이다. 현대시를 대중가요로 새롭게 만드는 작업은 국어교사 입장에서 보면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음악가들에게 충성을 바치고 경배를 하고 싶을 만큼. 그렇게까지 왜?


밥 먹듯이 케이팝을 듣는, 아니 소비하는 요즘 세대들이다. 수업의 딱딱함과 지루함을 흥겨움과 즐거움으로 단박에 바꿔주는 물꼬 노릇을 노래가 하기 때문이다. 다다익선이라고 제발 교과서 시들을 전부 케이팝으로 만들어 주시길 빌고 또 빌어 본다. 


특유의 고음과 강렬한 정통 락 기법으로 목청껏 불러버린 마야의 진달래꽃이 마침 국어(천재) 교과서에 실려있어 이 얼마나 좋은가. 더구나 2003년에 발표된 곡이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어필하는 띵곡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날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댈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녀 뒤에 가렸는지

사랑 그 아픔이 너무 커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대 행복하길 빌어줄게요

내 영혼으로 빌어줄게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내가 떠나 바람되어 그대를 맴돌아도

그댄 그녈 사랑하겠지

- 마야, ‘진달래꽃’에서


루시아 작사, 우지민 작곡의 진달래꽃은 원작시를 많이 변형시켰다. 하지만 내신을 위한 학습활동 차원에서 시와 대중가요의 차이점을 학생들과 함께 분석해 봤다. 


시와 대중가요, 그 표현의 차이

소월시에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와 같이 반어적 표현을 통한 슬픔의 감정이 절제된 반면, 마야의 노래는 ‘사랑 그 아픔이 너무 커 숨을 쉴 수가 없어’와 같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었어요. 오, 반어(反語)와 직설(直說)! 이게 시를 읽는 일반 독자와 노래를 듣는 대중 팬의 다른 점이다. 달리 말하면 대상에 따른 표현의 차이 아닐까. 시와 가요의 표현 차이를 좀 더 알아보자고 했더니 아이들 반응이 막 쏟아져 나온다. 


또 시에서는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와 같이 단정적인 행위를 통해 독자가 짐작만 했던 화자의 마음이, 노래에서는 ‘그대 행복하길 빌어 줄게요.’라고 구체적으로 드러나 시의 여운을 반감시켜 버렸어요. 오, 암시(暗示)와 명시(明示)! 그래 이 정도의 감상평이라면 대만족이다. 완전학습이 따로 없네. 아주 좋아요. 굿입니다~~ 


토론 분위기의 이런 흥겨운 수업이 어디 있으랴? 다시 한번 대중가요 관계자 여러분들께 리스펙!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말없이 말없이 말없이

어쩌라는 말인가요

떨리는 이 두 손을

살짝 놓아주는 일

그것밖에 내게

남아 있지 않다니

    (중략)

대답해 주오 시인이여

정녕 이것이 마지막인지

가르쳐 주오 왜 당신은

나의 손을 놓으려 하는지

가엾은 사람 바보처럼

결코 나를 잊지 못할

- 박창학, ‘소월에게 묻기를’


한편 소월의 시에서 영감을 얻거나 아예 소월을 동경하며 만든 노래가 있다. 문학(동아) 교과서에 실려있는 박창학 작사, 윤상 작곡의 ‘소월에게 묻기를’이 그것이다. 

가사를 쓴 박창학은 진명여고 문학 교사로 재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시적이면서도 간결하고 평이한 노랫말을 보니, 과시 시인이 따로 없다. 

노래 가사를 보면 화자는 시인에게 이별의 이유를 묻고 싶다고 했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고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다는 시인의 마음! 그러나 그 마음을 정녕 알 수 없으니 가르쳐 주고 또 대답해 달라며 안타깝고 애달프게 묻는 가사!


이처럼 시와 노랫말은 서로 통하고 있다. 그래서 시와 노랫말이 참으로 정겹다. 마치 오래된 연인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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