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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Aug 22. 2022

김광섭, 저녁에 vs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현대문학-with 케이팝] 세상사 깊은 인연, 문학과 미술의 만남!

현대문학에서 시 수업은 할 만합니다. 난해하지 않고 간결하고 평이한 시는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임하니까요. 거기에 케이팝 하나가 있으면 더욱더 분위기가 살아나고 신명난 수업으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김광섭의 저녁에를 차용한 유심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함께 해봅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운명적 만남,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시의 화자는 별과의 운명적 만남에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별의 시간이 되자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불교적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인식을 노래한 이 시 덕분에, 인간적 만남이란 것이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근원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으로 위대한 예술이 창조되었다. 바로 시인 김광섭과 화가 김환기의 만남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광섭과 김환기는 성북동에서 함께 살던 이웃사촌이다. 그러면서 서로에게는 무한한 존경심을 가진 벗이기도 했다. 나이로 따지면야 시인이 화가보다 여덟 살 형이지만 예술가들에게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1963년, 김환기는 새로운 공부를 위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이국만리 타향의 객지에서 절친 김광섭의 시 한 편을 읽었다. 바로 ‘저녁에’이다. 향수에 젖어 고국의 인연들을 떠올리며 그는 캔버스에 한 점 한 점 수없이 많은 점을 그리기 시작했다. 


'점 하나에 추억과 

점 하나에 사랑과 

점 하나에 쓸쓸함과 

점 하나에 동경(憧憬)과 

점 하나에 시(詩)와 

점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고 하면서 점들을 캔버스에 찍었으리라.


<김환기,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추측컨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시구절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김환기는 화면 전체에 점을 가득 찍고, 그 점 하나하나를 거듭 둘러싸서 색깔이 중첩되고 번져 가도록 하는 방법으로 신비스럽고 무한한 공간감을 창출했다. 밤하늘의 별처럼 검푸른 점들이 빼곡히 가득 찬 추상화 점화! 바로 한국 미술사에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 김광섭과 김환기

때마침 서울에서는 한국일보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이 열렸다. 시 ‘저녁에’에서 영감을 받은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출품되었다. 동양적인 사고와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국내 미술인들의 놀라움과 찬사가 뒤따랐다. 당당히 대상을 차지하였다. 문학이 추구하는 세계와 미술이 추구하는 세계가 이토록 서로 일치하고 소통할 줄이야. 절친이요 베프인 두 사람, 과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났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한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영감을 받은 대중가요가 한 곡이 있었으니 유심초가 히트시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그것이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 

뚜루뚜루루 뚜비두와 뚜루뚜루루 뚜비두와

뚜루뚜루루 뚜비두와 뚜루뚜루루 뚜비두와아



세상사의 무상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났을까?

네이버 지식백과 ‘장유정의 가요앨범사’를 참고하면, 유시형, 유의형 형제 듀오가 결성한 그룹 ‘유심초’는 1980년에 이 음반을 발매했다. 대표작 ‘사랑이여’는 1981년 대학생이 좋아하는 노래 톱텐에서 1위를 기록했을 만큼 형제 그룹의 인기는 엄청났다. 그 여세를 몰아 1981년에는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남자부문 신인가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유심초는 1975년에 데뷔하여 1985년에 해체되었다. 세상사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듯, 인기란 것도 세월 앞에서는 그저 무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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