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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Aug 12. 2022

구지가 vs 주문(mirotic)

[고전문학-with 케이팝] 고대 집단 무가(巫歌)와 케이팝의 주술(呪術

고전문학에서 고대 집단 무가를 수업하다 보면 생각나는 케이팝이 있습니다. 바로  ‘주문(mirotic)’과 ‘소원을 말해 봐’입니다. 아이돌 그룹인 동방신기와 소녀시대의 노래로서, 그들은 집단적으로 군무를 추면서 주술성이 강한 노래를 불러 팬들을 장악합니다. 이번에는 고대가요 ‘구지가’와 케이팝의 주술요를 한번 엮어 보겠습니다.


거북아 거북아(龜何龜何)

머리를 내어라(龜何龜何)

내놓지 않으면(若不現也)

구워서 먹으리(燔灼而喫也)

-고대가요, ‘구지가’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의 신화와 함께 전해오는 삽입 가요로서,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해 구지봉(龜旨峰)에서 신의 소리가 들려 추장들이 마을 백성 300여 명을 구지봉에 모아 놓고 신의 계시대로 흙을 파헤치고 춤을 추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노래를 합창시켰다. 그러자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와 6명의 귀공자로 변하여 각각 6가야의 왕이 되었는데, 그중 제일 큰 알에서 나온 사람이 수로왕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지가(龜旨歌) [두산백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마을 사람 수백 명이 모여 함께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고, 그리하여 신이 부여한 미션을 온전히 완료했는데, 이 노래를 ‘집단 무가’라고 하는 이유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言은] 무쇠[金]도 녹일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고 하는 말. 이건 고대가요 ‘해가’에서 노인이 한 말이기도 하다.     

누구든 원하는 바가 있고, 뜻한 바가 있다면 반드시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여서 소리쳐야만 그 소원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 이 노래 공식은 현대에 와서도 통한다. 동방신기의 ‘주문’은 이걸 완벽하게 입증하고 있다.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헤어날 수 없어

I got you under my skin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넌 나의 노예

    (중략)

니 꿈속의 난 널 지배하는 마법사

내 주문에 넌 다시 그려지고 있어

I got you under my skin

My devils ride 더는 숨을 곳이 없잖아

그렇다면 이제 즐겨보는 게 어떨까

I got you under my skin     

이 얼마나 멋진 노래이고 춤인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닌 다섯 명의 멤버가 한 치의 틈도 없이 칼군무를 추면서 주문을 왼다. “넌 나의 노예”라고. 그러면 수많은 ‘카시오페아’들이 열광을 하면서 동방신기에게 미쳐 빠져든다.      


문학수업에서 고대가요 ‘구지가’ 단원은 참으로 흥겹고 재미있다. 교사가 “넌 나를 원해”라고 외친다. 그러면 주저 없이 “넌 내게 빠져” 하고 아이들이 호응한다. 이번엔 “넌 내게 미쳐”라고 외치면, 바로 “넌 나의 노예”라고 소리 지르면서 주거니 받거니 흥을 쏟아낸다. 그래, 바로 이거야. 다 같이 소리 질러! 교실이 일순간 공연장으로 돌변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수업하는 게 뭐 최고의 선(善)이고 진리 아닌가? 현대판 집단 무가의 일례(一例)로서 소녀시대가 불렀던 ‘소원을 말해 봐’는 어떠한가?     


난 그대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행운의 여신 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 boy

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r wish

소원을 말해봐

I'm Genie for your dream

내게만 말해봐

I'm Genie for your world

소원을 말해봐

  (중략)

난 그대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행운의 여신 소원을 말해봐

너의 Fantasy를 숨김없이 말해봐

나는 Genie 길을 보여줄게

니가 가진 소원 숨김없이 말해봐

너의 Genie 내가 들어줄게

소원을 말해봐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 봐’에서

역시 아홉 명의 멤버가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주술을 건다. “I'm Genie”라고. 소원을 말해 봐. 얼마든지 내가 들어준다고. 당연히 난리가 났다. 오빠팬을 넘어서 이모팬, 삼촌팬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쏟아내면서 열광을 한다.     

K-POP에 나타난 집단 무가적 가요라 할 수 있는 게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노래나 빅스의 노래에도 있다. 누군가 학술적으로 한번 접근해봤으면 좋겠다.  

   

집단 서사적인 주술요에는 ‘구지가’ 외에도 신라 성덕왕 때의 ‘해가’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길에 바다용이 나타나 그의 아내인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당황하는 그의 앞에 한 노인이 말하길, “옛말에 뭇사람의 입김은 쇠[金]도 녹일 수 있다고 하였으니, 용인들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소? 경내에 백성들을 모아 막대기로 땅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나타나리라.”

노인의 말대로 하였더니 과연 바다용이 수로부인을 내놓았다고 한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龜乎龜乎出水路)

남의 부녀를 빼앗아간 죄가 얼마나 큰가(掠人婦女罪何極)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汝若悖逆不出獻)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고 말리라(入網捕掠燔之喫)

-고대가요, ‘해가’     


카, 역시나 어마 무시한 위협적인 말 아닌가. 이러한 고사(古事)로 보건대 군중의 힘은 짜장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있다는 걸 정치인들이 알아야 하는데 여전히 그들은 나몰라다. 그래서 우린 짜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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